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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PLANT(植)/Opinion 2007.01.12 00:04
사랑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다. 그건 조건과 배경이 주는 위협일 뿐이지 사랑의 본질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가슴과 가슴이 만나고 시간과 시간을 같이 섞어내면서 느끼는 수만 가지 느낌이 사랑이다. 거기엔 기쁨도, 고통도, 슬픔도, 아픔도, 즐거움도 있다.
젊다는 건 직선이다. 순수하다는 것도 직선에 가깝다. 사랑이 가장 깊고 정직하게 올 때 담대하게 나아가 사랑을 부둥켜안을 일이다. 섣부르게 오지 않은 미래를 가지고 재고 재단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다. 살다가 정면으로 사랑이 온다면 그게 서슬 퍼런 칼날이든, 달빛 스민 아름답고 부드러운 향기든, 두려워하지 말고 가슴 깊숙히 껴안아야 한다는 거다.

일곱 송이 수선화(김하인 지음) 중에서...
옛날에 읽다가 눈물짜게 만드는 내용이 싫어서 책장에 쳐박아 놓았었는데 읽다만 곳부터 다시 읽다가 발견한 단락이다. 불현듯 드는 생각은 머랄까... 그렇게 사랑할 수 있던 때가 이젠 지난게 아닐까라는 생각이다.
순수하게라기 보다는 무모하게 조건과 배경을 고려하지 않은채 누군가를 사랑하기엔 너무 늦었다기 보다 이젠 그런 사랑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게 아닐까 싶다. 솔직히 두렵다. 사랑이 주는 고통과 슬픔과 아픔이 사랑이 주는 기쁨이나 즐거움으로 극복해낼 수 없는 경우를 또 겪게 될까봐서...
그렇다면 아직 누군가를 사랑할 준비가 안된 걸까? 쩝~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쯤이면 준비가 될까? 과연 준비가 된다고 해서 사랑할 수 있을까?
사랑하고 싶다.
설레이고 싶다.
돌아가고 싶다.

내일은 점심 때 꽃집에 가서 수선화 한 송이 사다 책상에 올려놔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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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PLANT(植)/Opinion 2006.12.20 23:26

선택은 힘들다.

중학교 때 담임선생님과 여러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실업계 고교를 가겠다고 아버지께 말씀 드렸을 때 아버지는 내 의견을 존중해주셨다. 하지만  당시 내 의견을 꺾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 나중에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었다. 나의 선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임을 아버지 탓으로 돌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때의 선택은 나에게 최선이었고 지금은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

이젠 학교가 아니라 회사를 선택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있다.

이번에 나는 여러 사람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정말 고맙게도 자기 일처럼 조언을 해줬다. 근데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과는 반대를 이야기하는 걸까? 하지만 나는 이번에도 그 수많은 조언을 뒤로한 채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려고 한다. 고등학교를 선택하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보다 더 신중할 수 없다. 나는 일주일 이상 고민했으며 더 이상의 고민과 갈등은 의미가 없다. 물론 나의 선택에 대해서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나의 선택과 동일한 조언을 해준 소수의 분들(특히 아버지) 탓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항상 내 편이다. 나의 강력한 후원자이시다.

이젠 편히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적어도 오늘 만큼은...

앞으로도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갈등할텐데...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그동안 피를 말리는 듯 했던 고민과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난 뒤에 읽게된 영회님의 포스트 '개발자로 살아가는 길'에서 가장 가슴에 와닿는 문장을 옮겨본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말이 오래동안 회자되었는데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피부에 와닿는 단어로 바꾸면 '용기 희생'이 된다. 선택하기 위해서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뒤를 돌아보지 않는 용기가 요구된다. 또, 선택한 길을 가려면 그 길을 가면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다른 길을 포기해야 한다.


내가 가기로 선택한 길을 가면서 나 자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비록 분명하게 내가 나아갈 길을 보여주시지는 않지만 늘 나와 함께 하시는 그 분에 대한 믿음이 절실히 필요하다. 이젠 가지 않기로 한 그 길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새로운 각오로 출발할 시기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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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다. 두번째 직장에 첫발을 내딛는게...
과연 잘하는 짓일까? 조금만 더 참으면 더 나은 직장을 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마치 여자친구를 소개 받을 때나 세 번 이상 만난 여자를 계속 만나야 하나라는 고민을 할 때처럼 매우 조심스러운 순간이다. 지난 주까지만 해도 이런 고민이 없었는데 엊그제 헤드헌터의 전화통화 이후 마음이 뒤숭숭해졌다. 일단 그만 둔 회사에 대한 미련은 절대 없다. 단지 앞으로 가야할 회사가 정말 앞으로 3년 내지는 5년 후 내 경력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지가 의문이다. 정말 안타까운 것은 3년 내지는 5년 후에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아직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해보고 싶은 것은 많은데 자신은 없고 아직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월화수 사흘동안 쉬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웹개발은 아닌 것 같은데 지금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웹개발밖엔 없다. 그것도 MS진영의 웹개발... OTL 지금으로서는 3년 내지는 5년 후가 막연하다. 이런 내 자신이 너무나도 챙피하다. 오늘 다녀온 d2:MIX에서 d'strict CEO 최은석님이 언급했던 것처럼 웹디자인과 시각디자인 그리고 공업디자인 등의 경계가 무너져 가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개발자도 과연 5년 후엔 웹이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를 어느 정도 예측해서 지금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내일 가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기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미래를 생각해서 또 가기로 한 회사를 생각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려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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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만 4년 8개월만에 나의 첫 직장을 그만뒀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는 오늘까지 일했던 회사가 아니었으면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러가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더 열심히 하지 못했던 것, 좀 더 적극적이지 못했던 것, 회사 사정이 좀 더 나아졌을 때 그만둘 수 없었던 것 등등 열거하기엔 너무 피곤할 정도로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경험하고 느낀 것은 사실이다. 만 2년 동안의 S사 파견근무, 그리고 만 2년 동안 7개의 프로젝트, 그 가운데 두 번의 해외여행과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기회도 제공해주었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하기는 했다. 하지만 공을 들인 만큼 효율이 나질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장점들을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안타깝다.

솔직히 언제까지 개발자, 더구나 웹 개발자로 일할 수 있을지 나도 예측할 수 없다. 길어야 3년? 한국의 IT상황을 볼 때 아무리 길어도 앞으로 5년을 더 웹 개발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다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지만 늦어도 앞으로 3년 안에는 그 이후에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고민해야만 하고 준비해야만 한다. 물론 이미 많이 늦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절대 여기서 멈춰서는 안된다. 누가 대학원을 가고 누가 창업을 하며 누가 연봉 얼마를 받든 간에 더이상 남들과 비교할 때가 아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바라보며 마냥 부러워할게 아니라 내가 가야할 길을 찾아야 할 뿐이다. 막연하게나마 그동안 꿈꿔왔던 일을 현실에 나타나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회사를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진작 그랬어야만 했다. 그 놈의 정이 뭔지ㅠ.ㅠ

퇴사를 축하하기 위해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을 오랜만에 만났다. 아직도 여전히 그 세계에 있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약간의 부러움을 느낀 것은 솔직한 심정이다. 그의 말대로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지금 나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지만 나는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선택했고 그로 인해서 그동안 즐겁게 일할 수 있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어딜 가든 100% 만족이란 없으니깐 그나마 만족한다. 앞으로 갈 곳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을 것이고 견디고 견디다 못해 그만 두게 될 날이 오게 될 것이다. 아니면 정말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게 되든지 말이다.

앞으로 닥치게 될 여러 난관을 과연 어떻게 극복할런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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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라는 카테고리 안에 고찰 시리즈가 쌓이게 될 모양이다.
어쨌든 나름대로의 고찰을 시작 해보자.

고찰의 동기
grokker님내 포스트에 댓글을 남기셨길래 고마운 마음에 블로그를 찾아가 댓글을 남겨드렸더니 이제는 아예 내 블로그 링크가 포함된 포스트를 올리셨다. 어찌 이리 영광스러운 일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grokker님의 포스트에는 댓글이 수두룩하게 남겨졌지만 내 블로그엔 그저 방문자수만 늘어난 것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떠오른 생각에서 출발한 '댓글에 대한 고찰'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 블로그의 포스트에 댓글이 남겨지지 않는 이유에 대한 고찰이라고 해야 맞겠다.

고찰의 요약
1. 정기적인 구독자가 없다.
2. 댓글을 달만한 양질의 포스트가 없다?!
3. 다른 블로그에 댓글을 달지 않는다.
4. 메타 블로그에 등록하지 않는다.
5. 아직도 국내 블로그 문화에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고찰의 세부 내용

1. 정기적인 구독자가 없다.
아직까지 정기적인 구독자가 없기 때문에 댓글이 남겨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오프라인 친구들 뿐 아니라 주변의 직장동료 및 선후배들 중에서 블로그를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은 드물기 때문에, 또 주변에 이런 걸 하고 있다고 알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블로그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검색엔진을 통하거나 알라딘의 책리뷰를 통해서 우연히 방문하게 된다. 일시적인 방문이고 지나가는 방문이 많기 때문에 댓글을 남길만한 여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2. 댓글을 달만한 양질의 포스트가 없다?!
내 블로그의 포스트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대개 일종의 감상문에 해당하는 사사로운 느낌이나 견해를 담은 포스트들이 많다. 때문에 극히 주관적인 내용이기에 감히 댓글을 달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토론거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적인 지식이나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는 포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때문에 길이가 길 경우 끝까지 읽혀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내 경우에 있어서 포스트를 통해서 정보 내지는 도움을 얻거나 포스트의 내용이 마음에 와닿거나 해서 댓글을 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충동이 느껴질 때 댓글을 남기게 된다.

3. 다른 블로그에 댓글을 달지 않는다.
내 블로그의 포스트에 댓글이 달리기를 원한다면 다른 블로그의 포스트에 댓글을 정성껏 달아야만 한다. 그래야 관계, 대화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그런 관계가 없이 내 블로그의 포스트에 댓글이 달리길 원한다는 것은 망상이다. 만약 누군가 또는 어떤 것을 일방적으로 욕하거나 비방하는 포스트를 올리면 최소한 하나 이상의 댓글이 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 이후로 그 블로그는 끝이라고 본다.

4. 메타 블로그에 등록하지 않는다.
메타 블로그에 등록되지 않는 관계로 사람들이 방문하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어쩌면 쓸데없는 고집인지도 모르지만 블로그와 블로그를 통해서 알려지고 싶다. 메타 블로그에 등록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도 좋지만 내가 생각하는 블로깅은 아닌 듯 하다.

5. 아직도 국내 블로그 문화에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다.
결국은 내 블로그의 포스트에 댓글이 남겨지지 않는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기는 듯한 견해가 떠올랐다. 어쩌면 이 견해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무엇을 근거로 그렇게 이야기하느냐고 따진다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나 자신을 볼 때 그리고 몇몇 블로그를 다녀본 결과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할 이야기가 있는 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댓글이 하나도 없는 것을 발견했을 때 느껴지는 안타까움이 바로 내 견해를 뒷받침해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아직 그런 포스트에 댓글을 남길만한 용기나 적극성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낀다. 나의 무식함이 탄로날까봐서 괜히 긁어 부스럼 만드는 건 아닐까라는 걱정 탓에 말이다.

고찰의 결론
솔직히 방문자수가  늘어나는 것도 포스트에 달린 댓글이 많아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저 꾸준히 찾아와주고 나의 지식, 의견, 감상, 생각에 토를 달아주는 그래서 내 생각도 발전하고 상대방의 생각도 발전하는 그런 블로그를 만들어나가고 싶다. 물론 이런 생각은 진정한 블로그의 정신에 어긋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최근 웹2.0, 시맨틱웹, 주목경제, 롱테일 등등의 여러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는 블로그들이 있다. 나 역시 그들의 블로그에 포스트들이 올라올 때마다 방문해서 읽고 있다. 방문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들의 지식, 정보, 생각의 깊이와 넓이에 감탄하며 나 자신의 한계를 느끼게 된다. 때문에 댓글을 남기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의 블로그와 같아지고 싶은 마음은 없다. 끝까지 롱테일에 속해 있어서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한다고 해도 평범함 속에 감춰진 보석이고 싶다. '주목에 대한 고찰'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진정 가치있는 것이 아닐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절대 비약해서 해석하지 않길 바란다. 현재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 받는 '모든' 것들이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가 절대 아니다. 그 중에 일부가 그렇다(주관적인 견해)는 이야기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정체되거나 전혀 발전되는 게 없이 가만히 묻혀버리겠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언젠가는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정보들을 집대성하게 되는 날이 오도록 안간힘을 쓸 것이다. 단지 주목받기 위한 발버둥보다는 가치있는 것(상대적이겠지만)을 끊임없이 추구하면서 말이다.

우리는 인터넷에서 모두가 외롭다는 말은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솔직히 댓글이 없어서 블로그를 하는 것에 대한 회의를 느꼈다기 보다는 애인이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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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우님주목경제 몇 가지 관찰 결과를 정리했다.
그 기사를 읽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본다.
솔직히 이 기사에 대한 분류를 어디에 넣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Opinion의 약자로 만든 분류 Op.에 넣기로 했다.

주목이 자원이며 한정된 자원이고 따라서 재산이며 우리가 소유해야할 가치있는 재산이라고 한다.(1~4)
또한 주목은 희소성이 높아지는 자원이며 ROI(수익성)를 따진다고 한다.(5~6)
주목은 점점 더 주목을 받기를 원하고 주목 받기 위해서 다른 자원들을 희생한다고 한다.(7~8)
주목을 받으면 다른 종류의 자원이 선물로 따라오고 주목을 잘 관리하고 주목에 의한 대가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들이 주목 받게 된다고 한다.(9~10)

솔직히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은데... 좀 어렵다. 생각이 필요하다.
근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과연 나는 무엇에 주목하고 있느냐이다.
내가 무엇에 주목하고 있으며 내가 주목하고 있는 그것은 나에게 어떤 가치와 자원을 제공하는가?
과연 우리(인간?)가 궁극적으로 주목해야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해본다.
최근 우리(인간?)에게 가장 공통적으로 주목을 끄는 것은 무엇일까?
여전히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어디서 살까를 고민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대부분 세가지는 동시적으로 제공된다. 대충 살 곳이 있으면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있게 된다.
하지만 살 곳이 없으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제한 받게 된다. 물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해결되어도 살 곳, 잠잘 곳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은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어쨌든 사람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 해결된다면 우리는 다른 것에 주목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더 이쁘고 날씬해 질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큰 집에서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노후를 편하게 보낼 것인가?

하지만 이런 주목이 우선일까?
요즘은 진정으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 도대체 네가 말하는 주목해야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죽음 이후'라고...

왜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이 잘 거론되지 않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손으로 만져지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신앙 또는 신념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존재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죽거나 하면 사람들은 그때서야 잠시 막연하게나마 죽음 이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다.

만약 죽음 이후에 무엇인가가 있다면(참고로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죽음 이후이 삶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 먼저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주목이 선행되지 않은 채로 현재 누리고 있는 삶 가운데서 주목하는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기(내가 알기론) 때문에 우리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 들은 바도 없고 존재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환생이나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 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든지 각자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판단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건 지금 당장 그 주목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실질적인 혜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죽음 이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우리의 주목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나의 존재 이유가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하도록 돕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태우님이 이야기한 주목경제 몇 가지 관찰 결과에서 언급되었듯이 내가 죽음 이후에 대한 나의 주목은 한정된 자원이고 소유해야할 가치가 있는 재산이다. 더구나 다른 주목 대상이 많은 가운데서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을 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매우 높은 희소성을 가진 자원이다. 또한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의 수익성은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지금 분명하게 어떤 수익이 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얼마나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으며 그 주목을 위해 다른 자원들을 희생하고 있는가?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은 현세계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원을 제공해주며 내가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거기에 주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오늘 나의 '주목'에 관한 고찰이다.

분명 다른 사람이 무엇에 주목하든지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세상은 갈수록 다원화되어가고 상대적으로 변화되어져 가고 있다. 절대 진리라는 것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근거 없는 허상이 아닌게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 주목이 가져다 주는 보상이 너무나도 크다면 주목하도록 강요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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