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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ster of I love you Phoillip Morris
I love you Phillip Morris

<에이스 벤츄라>라는 영화에서 처음 본 짐 캐리라는 배우를 좋아한다. 영화 속에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그의 연기가 다른 배우들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단지 짐 캐리와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이라는 것만 알고 보게 된 이 영화에 대해서 과연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이 영화를 통해서 얻은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더구나 이 영화의 내용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니!

오션스 시리즈를 능가하는,
자기의 동성 애인을 위한 스티븐의 화려한(?) 사기 행각과 감옥에서의 그의 수완은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짐 캐리(스티븐 러셀 역)과 이완 맥그리거(필립 모리스 역)의 연기를 보면서 정말 배우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궁금했다. 혹시 그들이 동성연애자는 아닐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스티븐에 대해서 가만히 살펴보면 그는 부모로부터 버려진 아이였고 어려서부터 동성연애자였으며 비록 학력은 낮았지만 비상한 두뇌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그 사람을 곁에 두기 위해서, 그 사람의 곁에 있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그는 정말 외로움을 싫어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영화 속에서 스티븐과 결혼한 여자 데비는 독실한 크리스쳔으로 등장한다. 그녀는 스티븐을 이해하고 인정해주며 스티븐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을거라는 이야기를 한다. 사실 작가나 감독이 이와 같은 대사를 삽입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은 아직도 동성연애에 대한 기독교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이해와 수용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의 병리적인 모습과 스티븐의 사기 행각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사회 내지는 조직의 병페 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좀 더 깊이있게 영화의 장면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읽고 싶지만 그러기엔 내공이 부족하다. 솔직히 그럴 여유가 없는게 안타깝기도 하다.

어쨌든 영화를 보면서 동성연애에 대한 개인적인 입장이나 주관을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서 반가웠다. 과연 짐 캐리의 다음 작품은 어떤 것일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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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

두뇌유희 프로젝트, 퍼즐(김태경 감독, 문성근/주진모 외 주연, 2006)은 흥행하기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영화는 제목처럼 정말 퍼즐조각이 흩어져 있다가 맞춰지듯 흘러간다. 마치 모노폴리(이향배 감독, 양동근 외 주연, 2006)랑 비슷한 느낌이 없지않다. 아마 이런 류의 영화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Pulp Fiction, 1994)이 그 원조가 아닐까 싶다. 마치 퍼즐 조각처럼 이야기가 이리 저리 흩어져 있다가 결말에 가서는 한 폭의 그림처럼 맞춰지는 영화 말이다.

구성상 아쉬운 점들은 굳이 지적하고 싶지 않다. 이래저래 편집하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암튼... 중요한 것은 감독은 무언가를 계속 말하려고 한다는 점이다. 어쩌면 그가 크리스쳔이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억지로 끼워 맞추려고 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전혀 무관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갑자기 X라는 사람이 다섯 명의 사람을 끌어모은다. 모인 다섯 명은 X가 누구인지 궁금해 하면서도 일에 참여한다. 그런데 X는 그 중에 리더격인 한 사람을 죽인다. 나머지는 서로를 의심하게 되고 결국 서로를 죽이게 된다.

과연 그들이 서로를 믿고 죽이지 않았다면 영화의 결말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해피엔딩? 글쎄... 아마 그런 경우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못하니까...

누군가가 나를 특별한 이유와 목적을 갖고 불렀다면 쉽지않겠지만 나는 그를 믿고 끝까지 내 임무를 마쳐야 한다. 그래야 살 수 있을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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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일명 '우행시'라는 줄임말로 불리는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송해성 감독, 강동원/이나영 주연, 2006)은 공지영씨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다. 원작 소설이 베스트셀러였음에도 불구하고 읽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그다지 끌리지가 않아서 였을 것이다. 억지 눈물을 쥐어 짜게 만드는 내용일까봐서 말이다. 어쩌면 일종의 편견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를 봐서는 내 예상이 크게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영화 역시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그나마 다른 불치병 영화와는 색다른 무언가가 있었음을 인정한다.

이런 나에 대해서 감정이 메마른게 아니냐고 할런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눈물이 쏟아지지 않을 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사형 집행 장소로 끌려가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사형 집행 장소에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은 아마도 그 사형수를 용서하지 못하는 피해자이거나 그에 상응하는 상처를 입은 자가 아닐까 싶다. 더구나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죄까지 스스로 뒤집어 쓰고 약간 억울한 면이 없지 않게 사형 선고를 당했으니 말이다.

원작자나 영화 감독은 과연 무엇을 이야기 하려고 했던 것일까? 자살? 사형제도? 양심? 용서? 사랑?

어린 시절 아픈 사건으로 인해 어머니를 용서 못하고 자살하려는 한 여자(이나영), 가난했던 과거와 사랑했던 여자의 자궁외 임신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사고를 칠 수 밖에 없어서 사형 선고를 받은 한 남자(강동원), 그들만의 행복한 시간을 엿보는 재미는 정말 눈물 겨웠다. 하지만 죽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둘 중에 한 사람은 죽고 한 사람은 살아남는다. 처음부터 예고되었던 결말인데도 불구하고 관객들은 특히나 여성 관객들은 훌쩍대고 만다.

'살고 싶어졌다'는 남자 주인공의 대사는 정말로 가슴이 아프다. 사랑이라는 것은 그토록 죽고 싶어했던 사람을 살고 싶어지도록 만드는 엄청난 위력을 가지고 있다. 어쩌면 강동원, 이나영이라는 배우 덕분에 영화는 더 애절하게 느껴지고 관객들로 하여금 그들의 행복한 시간이 부럽게 만든다.

사형제도에 대한 찬반 논란을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형제도 아래서 죽어가고 있지만 진정 그들이 살 권리마저 박탈 당할 만큼 큰 죄를 지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제대로 해야할 책임이 재판관들에게 있고 그런 법률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들이 잘못된 판단과 기준으로 법을 만들고 그런 법을 집행한다면 그들 역시 같은 댓가를 치루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기 때문이다. 마치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는데 법치국가에서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나한테도 전혀 책임이 없지는 않다고 생각된다. 매우 소극적이지만 올바른 법이 만들어지고 집행되도록 기도하는 방법 밖에는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없는 듯 하다.

쩝~ 영화 한 편이 이런 주제까지 이야기 하도록 만든다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된다.

과연 나에게 있어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일까? 그분을 만나는 시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주일에 하루 몇 시간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그 시간을 늘려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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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NOW(現)/Movies 2006.10.26 16:11

영화를 보고나서 바로 올렸어야 하는데... 거의 2주가 다 지나간다  OTL...

영화 괴물(The Host)는 2006년 하반기 영화계를 평정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아직 하반기가 다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앞으로 또 어떤 영화가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을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선 그런 느낌이다. 솔직히 처음 괴물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린 시절에 봤던 우뢰매와 같이 어설픈 괴물이 등장하는 건 아닐까 싶었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관객들을 동원하기에 그 정도는 아니구나 싶었고 직접 보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괴물이 등장하게된 동기나 이유가 조금은 어설픈 면이 없지 않아 있다. 만약 그런 이유라면 한마리가 아니라 여러마리 나타났었어야 납득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더구나 돌연변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지능이 높은 돌연변이가 아니었나 싶다. 쩝~ 이렇게 따지고 들면 사실 한도 끝도 없다고 본다. 마지막에 송강호 역의 딸이 살아나지 못한 것은 몹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대부분의 관객들이 그러기를 바라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영화는 그런 기대를 꺾어버리고 만다. 왜 그랬을까? 딸과 함께 있던 꼬마아이까지 둘 다 살렸으면 좋았을 것을... 아마도 나름 의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영화는 괴물의 등장이 과거 미군부대에서 유출된 독극물에서 비롯된다고 나타난다. 때문에 미국에 대해서 안좋은 시각을 가지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현재 환경오염의 주범은 국내 기업들이고 정부 또한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내가 환경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명확한 증거 자료를 제시할 수 없지만 그동안 언론에서 떠들어 댔던 것들을 보면 주변의 눈치를 보면서 이야기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미국을 욕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는 어떤지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바이러스에 감염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격리시키고 당사자의 말을 믿지 않는 장면에서 마치 거울에 비친 현실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영화는 충분히 허구성을 지니고 있을 수 밖에 없다. 환경오염에 의해서 괴물이라는 존재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지만 그 괴물은 눈에 보이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 사실 눈에 보이는 괴물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괴물이 더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당장 나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자연 환경을 조금이나마 보호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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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가 사랑한 수식(The Professor and His Beloved Equation, 博士の愛した數式, 2005)은 역시 국내 미개봉된 작품이지만 그 감상평을 짧게나마 남겨본다.

정말 심심하면 안 풀리는 수학문제를 붙들고 씨름을 할 정도로 수학을 좋아했던 나로서는 정말 재밌게 본 영화이다. 마치 수학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학에 재미를 붙이게 만드는 한 편의 교육용 영화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무리수, 허수, 완전수, 우애수 등의 단어들이 옛날 수학 문제를 풀 때 느꼈던 감정들이 새삼 떠오르게 해서 너무나 좋았다.

액션이나 호러물 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지 않는게 낫다고 생각한다. 괜히 잠만 잘테니 말이다.

과거 수학자들은 대개 철학자인 동시에 예술가이면서 또한 과학자이기도 했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 박사는 수학자이면서 동시에 시인이었다. 숫자를 사랑하고 숫자로 시를 쓰는 그의 모습이 너무나도 친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런 그의 삶이 조금은 동경이 되기도 한다. 더구나 종종 기억력 감퇴를 절감하게 되던 나로서는 80분 동안만 기억을 지속시키는 박사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내 주변을 둘러보아도 숫자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 박사처럼 나도 내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숫자들을 가지고 어떤 연관관계가 있는지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박사가 사랑했던 오일러의 공식은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 깊이 생각하지 못하고 지나쳤지만 조만간 시간을 내서 한번 그 증명을 살펴봐야할 것 같다. 영화 중간 중간 정말 마음에 와닿는 대사들이 많았는데도 불구하고 차마 기억해내지 못하는 내 자신이 참 안타깝다. 적어 놓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영화를 중간에 멈추는 게 내키지 않아서 그러지도 못했다. 중간중간 '루트'를 아끼는 박사의 모습에서 또 박사를 위하는 '루트'의 모습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끝부분에 기모노를 입은 일본인들의 연극은 너무 지루하여 차마 보고 있을 수가 없어서 스킵하고 말았다. 쩝~ 그런 부분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는 가보다.

책이 먼저인지 영화가 먼저인지 알 수 없지만 책으로 봤어도 잔잔한 감동을 주었을 게 분명하다.

마지막에 엔딩크레딧이 올라오기 전에 나왔던 시를 옮겨본다.

한 알의 모래에서 하나의 세계를 보고

한송이 들꽃에서 하나의 천국을 보고

손바닥에 무한을 실어

한순간 속에서 영원을 느낀다.

- William Blak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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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man

Inside man

오랜만에 스파이크 리Spike Lee 감독의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좀 더 참았다가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서 볼 수도 있겠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조디포스터Jodie Foster와 덴젤워싱턴Denzel Washington의 연기가 궁금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제목이 말하는 "인사이드 맨(Inside Man)"이 누구인지 몹시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 덴젤워싱턴은 예전에 아들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인질극을 벌였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네고시에이터(협상가)로 등장한다.

이 영화의 매력은 영화의 마지막까지 궁금하게 만드는 인사이드맨이다.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와 브이 포 벤데타를 떠올리게 하는 인질극은 진정 압권이다. 그렇게 인질극까지 벌였으나 은행은 털리지 않았고 사상자도 없이 끝나버린 사건, 때문에 그냥 덮어버리려고 하는 사람들, 그러나 네고시에이터는 끝까지 밝혀내려고 안간힘을 쓴다.

금고 리스트에는 없는 금고, 그 안에 들어 있던 은행장을 파멸시키기에 충분한 증거물, 그걸 노리는 은행털이들... 철저하고 치밀한 계획을 통해 비록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목적을 달성하는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영화를 볼 때마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런 것보다도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이다. 헐리우드 영화들의 공통적이면서도 단순한 주제와는 좀 다른 부분이 있다는 게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 아닐까 싶다.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존재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는 겉으로는 착한 척하지만 지난 과거의 잘못을 덮어버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의 또 다른 모습은 아닌지 묻게 된다. 인사이드맨Inside man 어쩌면 스파이크 리 감독은 영화를 통해서 각 사람들의 내면에 존재하는 그런 인사이드맨을 발견하게 되기를 바랬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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