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ia Kliegel'에 해당하는 글 1건

Noblesse.com Event Result

Maria Kliegel Cello Recital Ticket

Maria Kliegel Cello Recital in Seoul

첼리스트라고 하면 의례히 파블로 카잘스(Pablo Casals)나 요-요마(Yo-YoMa) 또는 장한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나마 귀에 익은 이름이 그 정도이다. 솔직히 그러면서도 첼로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매우 우습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카잘스나 요요마의 음반을 한장 이상 가지고 있다는 것 뿐만 아니라 바흐의 무반조 조곡은 기본이고 멘델스존의 첼로 소나타 및 무언가 등을 들어서 안다는 것으로도 보통 이상으로 좋아한다고 나름 주장할 수 있다. 또한 이번 노블레스닷컴 이벤트 및 독주회를 통해서 마리아 켈리겔이라는 여류 첼리스트 한 명을 더 알게 되었으므로 첼로 음악에 대한 나의 관심도 내지는 지식수준이 클래식 음악 관련 비전공자로서 한 단계 더 올라갔다고 생각한다.

마리아 클리겔이라는 여류 첼리스트는 꽤 노장인 듯 싶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봐도 카잘스 만큼은 아니더라도 곧 그를 뒤따를 만큼이나 연륜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연륜에도 불구하고 전혀 고리타분하다거나 낡은 연주가 아니라 요즘 젊은 세대들까지도 아우르는 연주를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것을 보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첫번째 곡은 어김없이 바흐였다. 두번째 곡이 몹시 낯설고 지루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현대음악가 아르보 패르트(Arbo Paert)의 프라터(Fratres)였다. 들으면서도 예상했었지만 매우 실험적이고 지루한 듯 하면서도 변화가 돋보이는 음악이었는데 마리아 클리겔 나름대로의 해석이 녹아내린 연주였다. 이어서 슈베르트와 브람스 그리고 처음 들어보는 에이토르 빌라로보스(Heitor Villa-Lobos)의 음악, 그리고 두 곡의 보너스 연주, 마지막 '서울솔리스트 첼로 앙상블'과의 8중주까지 온 힘을 다해서 연주하는 모습이 진정 인상적이었다.

나름대로 카잘스나 요요마 등 이전에 들었던 음악들과 비교해보면서 들어보려고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마리아 클라겔 만의 독특함을 찾아내기에는 첼로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너무나도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비전공자로서 당연한 거겠지만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모든 연주자들의 연주가 똑같이 들린다면 굳이 다른 연주자의 연주를 들을 필요가 없어질 테니 말이다.

이번에도 관객의 약 70%가 음악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란 느낌이 들었다. 여기저기서 사제 지간이거나 선후배 사이처럼 보이는 모습들이 눈에 자주 띄었다. 왠지 나는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내가 올 곳이 아닌 곳에 온 것 같은 느낌.. 첼로 독주회라는 공연 특성상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중간 휴식 시간에 들려오는 사람들의 각각의 감상 소감을 들어보면 뭐랄까 다들 마리아 클라겔의 연주 기법을 배우거나 평가하려고 온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본인이 아니고서는 혼신을 다해 연주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충 기술적으로 연주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연주자로서 테크닉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이 왜 그 음악을 연주하는지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그 음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무엇이 있는지 등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프로그래밍 개발로 밥을 먹고 사는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프로그램 개발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해서 테크닉만 익히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보다 더 나은 개발을 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하고 어떤 고민을 해야하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공연장에서 나와 지하철을 타기 위해 시청역 계단을 내려가는데 여기저기 노숙자들이 잠잘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을 보면서 과연 저들이 마리아 클라겔의 음악을 듣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궁금했다. 아니 과연 들으려고 할까? 아마 그런 욕심이 있었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그런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고 여건이 조성된다면 어쩌면 그들의 삶이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극소수일테지만 말이다. 아뭏튼 문화를 누리고 즐기는데 있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공평하지 못한 구조를 갖고 있다. 문화를 누리고 즐기기 위해서 최소한의 경제력이 뒷받침 되어야 하는 구조 덕분에 결국 문화 향유 소외 계층이 생겨나는 것이다. 과연 그 문화 향유 소외 계층이란게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사회가 그렇게 만든 것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둘 중에 무엇이 원인이든지 간에 서로 문화 향유 소외 계층으로 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하고 사회는 또한 그런 계층이 생겨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물론 문화를 향유한다고 해서 모두 다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트랙백  0 , 댓글  0개가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