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소설'에 해당하는 글 6건

기욤 뮈소

NOW(現)/Books 2010.02.01 17:33
당신 없는 나는? - 10점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밝은세상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10점
기욤 뮈소 지음, 김남주 옮김/밝은세상

2010년을 맞이해서 첫 포스팅이 독서 후기인 것이 나름 기대스럽다. 물론 예전만큼 디테일한 독서 후기를 적기엔 여러가지로 장애 요인들이 많긴 하지만서도 최소한 월 1회 포스팅을 하겠다던 연초 작심이 이미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2월 첫날인 오늘 포스팅을 아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번역본 출간 순서대로 보면 2006년 <구해줘>(윤미연 역), 2007년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전미연 역), 2007년 <사랑하기 때문에>(전미연 역) 3부작에 이어서 2008년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김남주 역), 그리고 작년 2009년 말 <당신 없는 나는?>(허지은 역)을 발간해온 기욤 뮈소라는 프랑스 소설 작가의 작품들은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전 그의 작품에 대한 포스팅에도 언급했다시피 그의 작품들은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면서도 작품 중간 중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밑줄을 긋거나 노트에 옮겨적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도저히 작품의 흐름을 끊을 수 없어서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는 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소설 속에 담긴 서스펜스와 스릴, 그리고 로맨스와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를 통해 상처받고 치유받고 이해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키울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물론 자칫 가벼워보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TV를 포기하고 그만한 시간을 투자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사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는 꽤 오래전에 책을 사두고 읽지 않다가 이번에 <당신 없는 나는?>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손에 들게 되었는데 전작들에서 느껴졌던 공통점들이 가장 최근작에서는 조금 감추어져서 그의 작품이 한층 더 성숙하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 원어로 이 소설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데... 작가는 남성인 반면에 번역자들이 모두 여성인 것을 보았을 때 그의 글은 남성 번역가들보다는 아무래도 여성 번역가들에 의해서 번역될 때 그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프랑스 소설 남성 번역가들이 여성 번역가들에 비해서 그 수가 적거나 아니면 더 번역이 깔끔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동안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 등에 대해서는 이미 온라인 서점이나 각종 매체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으므로 이만 줄일까 싶다. 어쩌면 책의 내용 중에 밑줄이나 발췌하고자 했던 것들을 모아서 다시 포스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가능할런지...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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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 10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밝은세상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에 이어서 세 번째로 읽은 기욤 뮈소의 작품...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나를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다. 물론 번역이 잘되서인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원작이 받쳐주기 때문에 번역도 사는게 아닐까 싶다. 혹시라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법이 이전에 나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닐까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면서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드는, 놓을 수 밖에 없다면 최대한 빨리 다시 책을 잡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번 작품은 일종의 치료제 역할을 하는 듯하다. 아니 치료제라기보단 치료를 도와주는 촉진제라고 할까? 암튼 과거의 상처로부터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먼저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과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받으려는 의지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만큼 심각한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포함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상처는 타인에 의해서 입게 되는데 상처를 입힌 대상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빠른 치유의 지름길임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의 상처를 입혔느냐에 따라서 용서할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용서 하고 못하고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선택이기 때문에... 하지만 낫고 싶다면 빨리 용서하는게 최선이다.

수많은 미디어들이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도록 우리들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분노를 일으키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불사르곤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이런 미디어로부터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과 후세들의 미래는 너무나 어둡기 때문에...

다 읽어버려서 좀 아쉽다. 물론 또 다른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마치 호두 같아서, 깨뜨려야 속을 볼 수 있다. - 칼릴 지브란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 다음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 라고 말하다 보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다 지나간다. - 구스타프 플로베르

두려움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 믿음, 증오, 심지어 회의까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 하지만 삶에 집착하는 한 결코 두려움을 없앨 수는 없다. - 조셉 콘래드

행복해지려면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떻게든 불행을 피하기 위해 애써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어떻게, 누구로 인해 불행을 극복할 수 있을지 찾아봐야 한다. - 보리스 시룰니크

기욤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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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 10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밝은세상

정확하게 1년만인듯 하다. 기욤 뮈소의 구해줘를 읽은 때가...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올해 그의 최신작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다 읽게 되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과 등장인물이 과거-현재-미래를 뛰어 넘는 것 등은 구해줘와 비슷하지만 주인공이 달라서 인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현재에서 과거로 가거나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것 등은 어쩌면 너무나도 식상한 주제가 될 수 있는데 그리고 논리적으로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 늙은 엘리엇과 젊은 엘리엇, 그의 애인 일리나, 그리고 딸 앤지와 친구 매트 등 모든 등장인물들이 실존했던 것처럼 매우 생생하게 다가온다. 당장이라도 캘리포니아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젊은 엘리엇은 사랑하는 애인 일리나를 살리기 위해서 미래의 늙은 엘리엇은 사랑하는 딸 앤지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엇을 살리기 위한 친구 매트의 활약까지 지켜보면서 과연 나는 누구를 살리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행동들 하나가 미래에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어떤 결과든 그 결과가 나오게 되는 원인이 있듯이 오늘 내가 미룬 작업, 공부 등으로 인해서 언젠가는 야근을 해야한다거나, 시험에 떨어질 수 있는 여지를 두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어떤 것을 포기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당장 눈앞에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제 두달 뒤엔 33살이 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3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봐야 세살바기 갓난 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 10년 아니 5년 전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당시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돌이키고 싶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에 비하면 주인공 엘리엇은 진정 욕심이 없거나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에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사랑했던 여인만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지에 도달하려면 어느 정도 나이여야 할런지 말이다.

예쁜 처녀 옆에 앉아 있어 보라. 1분처럼 지나간다.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1분간 앉아 있어 보라. 1시간 처럼 지나간다. 이게 바로 상대성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우리에게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기 때문이다. - 세네카

올 가을에도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시간을 허비하는 책이 아닌 책들을 선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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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밝은세상
소설책을 읽는 것이 엄청난 시간을 낭비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대부분이 비소설조차도 잘 읽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위해 지하철을 타면 약 80%가 지하철 입구에서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일간지를 들고 읽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때로는 일상에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이 그저 흥미거리 내지는 '오늘 아침 메트로에서 봤는데... 어쨌다더라...' 식의 수다거리 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틈틈이 읽은 소설책은 내가 살지 못한 또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하고 살 수 없는 삶을 살아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물론 환타지나 무협지류의 소설을 이야기하는 게 절대 아니다. 그리고 TV드라마처럼 현실과는 엄청난 괴리감이 있는 영상이 주는 것과는 또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얼마 전 장폴 뒤부아의 '타네씨, 농담하지 마세요'를 읽을 때 주인공 타네씨가 물려받은 집을 수리하면서 만난 수많은 특이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봤던 것 같은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가운데 나는 '이 책이 너와 나를 가깝게 할 수 있다면'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폴 페레뮐터의 짧은 이야기를 통해 내가 경험할 수 없는 또 다른 삶을 경험하고 느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매우 기분이 좋다. 책을 읽는 동안만큼은 내가 주인공이 된 것과 같은 착각 속에서 주인공과 함께 여행하고 모험하고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아버지가 죽은 호수에서 '더러운 숲'을 수많은 고통과 추위 그리고 배고픔 속에서도 끝까지 견디어 통과해냈을 때의 그 감격을 글로써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쉽지 않다.
죽을 때까지 가볼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는 캐나다 호수의 정경을 나는 사진이 아닌 글로서 머리 속에 그려내고 마치 그곳에 가서 주인공 폴이 배 다른 여동생을 만나는 장면을 직접 보게 된다.
어쩌면 프랑스어 원문이 아닌 번역본이기 때문에 원문 자체가 지니고 있는 특유의 색깔이 많이 바랬겠지만서도 번역가는 나름대로 충실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했으리라고 믿는다.
제목만 봤을 때 과연 이 책을 통해 누구와 누가 가까워질 것인지 궁금했다. 아마도 주인공은 여행을 통해서 그동안 멀어졌던 자기 자신과 가까워진 것 같고, 이 책을 통해서는 배 다른 여동생? 아니면 독자? 둘 다 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소설가들 중에 얼마나 자신이 쓴 소설을 통해서 독자와 가까워지고 싶을까? 그런 소설가가 있기는 할까 싶기도 하다.
솔직히 처음에 제목에서 가장 갈급했던 건 하나님과 나를 가깝게 하는 책은 무엇일까 였다. 당연히 성경책이겠지만 꼭 성경책이 아니어도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은 많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틈틈이 하나님을 생각했었으니까 말이다. 내 주위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가까워질 수 있는 책이 많았으면 정말 좋을 것 같다. 그런 책을 써보고 싶다.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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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네 씨, 농담하지 마세요
장폴 뒤부아 지음, 김민정 옮김/밝은세상

얼마 전 프랑스 소설 구해줘(기욤 뮈소, 윤미연 옮김/밝은세상)를 구입할 때 이벤트 행사로 같이 따라왔던 책인데 읽으면서 손을 놓기가 쉽지 않았던 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주인공 타네 씨가 겪은 일들이 하도 농담같고 소설스럽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앞으로 과연 어떤 사람들이 등장할 것인지 궁금해서이기도 했고 결국 타네씨의 집은 어떻게 될까 궁금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정말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을 통해서 배우는 것도 많다. 특히 타네씨를 통해서 만나게된 사람들은 내 주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그런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더 재밌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라면 절대 타네 씨처럼 그렇게 부드럽게 너그럽게 대해주지 못했을 것 같다. 당장이라도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쓴다거나 아예 직접 모든 것을 다했을 것이다. 안되면 그냥 포기하고 살던지...
종종 우리의 인생이 건축물을 세우는 것에 비유되거나 공사중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만큼 완성되지 않은 모습이라는 의미이다. 타네 씨가 헌 집을 새롭게 꾸미려고 하는 것도 어쩌면 우리의 인생 속에서 날마다 조금씩 고쳐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 과정이 결코 혼자서만을 이뤄질 수 없으며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고쳐진다는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생각된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는 나 자신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새로운 사람이 나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나에게 피해를 입힐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나니 어떤 사람을 통해서 얻은 피해가 단순히 피해와 손해만이 아니라 무언가 깨닫고 배우는 것도 있으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때문에 누군가로 인해서 피해를 입거나 손해를 입었다고 해서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다.
나는 어떠한가?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인가? 피해나 손해를 줌으로써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만드는 사람인가? 아니면 유익을 주는 사람인가? 후자로써 살고 싶은 소망이 간절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유익을 주는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가? 이 질문은 평생 고민해야할 질문일 것이다.
내가 유익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
짧은 소설 책을 통해서 얻은 교훈이 참 많다. 이렇게 책을 읽고나서 조금이나마 고민하게 만드는 그리고 고민하는 이 가을이 너무나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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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밝은세상

오랜만에 집어든 프랑스 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인간(2004, 열린책들) 이후로 처음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둘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으니 과연 진정한 프랑스 소설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 싶지만 프랑스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번역자가 들인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그렇지만 기욤 뮈소라는 작가 이름도 매우 특이하다. 교보문고에서 진열된 책을 보면서 솔직히 후회하면 어쩌나 망설였었는데 아주 재밌게 읽었다. 프랑스에서는 2005년에 출간되서 2주만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78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국외소설부문 10위권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소설은 정말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쓰여졌다. 옮긴이의 말에도 언급되었지만 영상세대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듬뿍 담겨져 있다. 만약 쉬는 기간에 이 책을 붙잡았다면 아마도 밥도 안 먹고 끝까지 한 숨에 읽어버렸을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쨌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다 읽어버릴 정도로 푹 빠져버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때론 시간 낭비라고 여겨질 만큼 최악의 소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소설만큼 책 읽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고 본다. 각종 처세술, 재테크, 그리고 성공 사례 등을 담은 수필 등 실용서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서점가에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저자는 그런 사람들의 소리없는 외침과 절규를 소설로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구해줘'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절박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완벽하게 가리운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진정 그런 그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는 희망과 빛이 필요하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그것이 사랑 뿐임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죽음도 운명도 막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고 말이다. 물론 종교적으로 성경적으로 보자면 약간 부족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소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가슴에 와닿는 문구들이 수두룩한데 그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몇 개만 추려서 옮겨 본다.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이다.

- 기욤 뮈소, <구해줘> 중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 앨버트 코헨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

- 센트럴파크의 어느 벤치에 누군가가 새겨놓은 낙서


뉴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 헤맨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찾아 헤매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찾아 헤맨다.

뉴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때로는 누군가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그 누군가를 찾아낸다.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단 몇 시간일지라도 짜릿한 행복의 광휘는 이따금씩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환멸과 권태의 일상을 충분히 견디게 해준다.

- 기욤 뮈소, <구해줘> 중에서...


인간은 앞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지만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봐야 한다.

- S.A. 키에르케고르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지만 선은 흔히 그들과 함께 땅에 묻힌다.

- 셰익스피어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리고 죽음의 시간만큼 불확실한 것은 없다.

- 앙브루아즈 파레


이 소설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결말이다. 샘과 줄리에트가 둘 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줄리에트가 죽을 것인지 아니면 샘이 대신 죽을 것인지 궁금해하고 아무도 죽지 않기를 그들이 끝까지 살기를 바라게 된다. 저자는 그런 독자들의 심리를 꿰뚫고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매듭지었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그래야 독자들이 다음 번 책을 또 읽어줄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되었지만 조만간 영화로 제작된다고 했는데 과연 누가 샘과 줄리에트의 역을 맡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정말 소설 속에서 그려진 것과 같은 배우들이 있을까? 혹시 그들의 연기로 말미암아 소설에서 느꼈던 느낌들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수익을 얻어내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만큼 상세하지 못할 것이란걸 안다. 하지만 기대하게 된다.

샘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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