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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 소녀
트레이시 슈발리에 지음, 양선아 옮김/강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의 소설 진주 귀고리 소녀(Girl with a Pearl Earring, 1999)는 네덜란드의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그림 진주 귀고리 소녀(1665~1666년경)에서 비롯되었다. 사실 년초에 원서로 읽어보려고 서점에서 몇 번을 들었다 놨다 하다가 결국 못 사고 못 읽고 너무 궁금해 못견뎌서 번역판(양선아 옮김, 강출판사)으로 읽어버리고 말았다.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원서에는 없는 베르메르의 작품들이 번역서에는 친절하게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어서 그림을 감상하면서 소설까지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는데 약 나흘 걸린 듯 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 피터 웨버 감독, 스칼렛 요한슨 외 주연의 영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2003)를 봤다. 영화화하기 위해서 많이 각색하고 다듬은 느낌인데 솔직히 영화보다는 책이 훨씬 더 감동적이다. 영화를 먼저 봤으면 아마도 영화가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책을 통해서 상상하게 되는 등장인물들에 대한 감정 묘사들이 영화에서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낫다는 생각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베르메르의 진주 귀고리 소녀를 보면 다빈치의 모나리자 보다는 훨씬 더 낫다. 물론 더 젊은 여자이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약간 섬뜩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데 진주 귀고리 소녀는 끌어당기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고 나서 그런지 모르지만 더더욱 그림 속의 그녀가 참 아름답게 보인다.

비록 일생동안 35점의 작품 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소설 속에 묘사된 베르메르는 진정 예술가였다고 생각된다. 물론 그의 가족 입장에서는 좀 더 빨리 그려서 좀 더 많이 그렸더라면 덜 빚지고 살았겠지만 말이다. 현실 속에서도 항상 예술가는 그런 딜레마에 시달리는 것 같다. 하지만 당대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지만 후세에 그 가치가 빛을 발하는 걸 보면 어쩌면 당대에 돈에 매달려서 빨리 많이 그리는 것보다는 제대로 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솔직히 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딱히 떠오르는 게 없다. 단지 영화에서는 생략된 소설의 중간 부분에 베르메르가 그리트의 어머니의 생각에 대한 답변으로 이런 이야기를 한다. 실제 베르메르의 생각이기 보다는 작가의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옮겨본다.

그림을 대하는 자세에서 가톨릭과 개신교는 차이가 있지. 하지만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건 아니야. 가톨릭 교인들에게 그림은 영적인 의미를 제공한단다. 그런데 개신교도들은 어디에서나 무엇에서든 하나님을 본다는 사실을 상기해봐. 그렇다면 탁자나 의자, 그릇이나 주전자, 병사와 하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그리는 일 또한 하나님의 창조를 찬양하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나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림에 영적인 의미를 두는 가톨릭의 신앙은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아직도 스케치 조차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언제쯤 채색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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