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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NOW(現)/Books 2010.10.13 15:48
죽음의 중지 - 6점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해냄

별 3개가 갖고 있는 의미는 먼저 이 작품에 대한 이해도이고 또 다른 의미는 그의 전작인 눈 먼 자들의 도시와 비교했을 때의 상대적인 평가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단 하루라도 더 삶을 연장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현실로 이뤄졌을 때 어떤 문제들이 야기되는지에 대해서 그동안 아무런 생각이 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다시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것이 이뤄진다고 해서 그게 결코 옳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출생과 죽음, 곧 시작과 끝이 있는 것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유한하고 제한된 물질 세계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야기하고 하나님이 이야기하신 천국, 즉 시간과 공간이 무한한 영적인 세계에서의 영생은 현재 살아가고 있는 세계에서의 죽음이 없는 삶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한다.

문득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갈수록 자살을 시도하거나 성공하는 사례들이 꾸준히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만약 죽음이 멈춘다면 스스로 죽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충격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는 것이 너무나 행복해서 더 살기를 원하는 사람이나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괴롭고 고통스러워서 죽기를 원하는 사람이나 누구든지 죽음이 멈추게 되면 삶과 죽음의 의미와 그 중요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작품의 후반부에 죽음이 보낸 죽음을 예고하는 편지가 전달되지 않고 다시 되돌아오는 죽음의 대상인 첼리스트와 사랑에 빠진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과연 주제 사라마구는 그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일까? 죽음을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한 것일까?

다시 읽어보면 좋겠지만 그러기엔 조금 지루함이 없지 않다. 눈 먼 자들의 도시만큼 몰입하게 만드는 작품은 더이상 기대해서는 안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최근 측근에서 장례 소식을 접하고 문상을 하러 가게 되면 이 소설의 내용이 떠오르곤 한다. 상주를 비롯하여 유족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고민인데... 살고 죽는 일은 그 누구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임을 늘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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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PLANT(植)/Opinion 2008.12.23 17:43
지난 일요일에 회사 동료 부친께서 소천하셔서 오늘 이른 아침 화장터를 방문했다. 두시간여동안 기다리면서 또 다른 고인들, 유족들 그리고 수많은 문상객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물론 날씨가 추워서 추위에 떠느라 깊이있게 생각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사람은 꼭 한 번 죽기 마련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는 순간까지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다. 살아있는 동안 참 행복을 만끽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물론 행복이란 것이 지속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때론 불행이, 때론 행운이 찾아올 때가 있는 것이다.

죽음이란 불행일까 행운일까?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일단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인정하느냐 안하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싶다. 죽음 이후의 삶이 있고 없고를 떠나 현재의 삶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죽음 이후의 삶이 있거나 없거나에 따라서 현재의 삶에도 영향을 미치므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동물과 다르게 단지 육체만이 아닌 영혼을 소유한 유일한(
적어도 현재까지는 우주상에서) 존재로서 죽음 이후의 삶은 존재한다고 믿고 죽음 이전의 삶은 죽음 이후의 삶에 분명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죽음은 육체를 버리고 영혼을 소유한 채로 살아가게될 또 다른 삶으로의 통과의례 내지는 출입구이다. 따라서, 죽음을 슬퍼하거나 괴로워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단지, 죽음 이전의 삶 동안 함께 살았던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짦은 헤어짐이 슬프고 괴로울 뿐이다. 물론 죽음 이전의 삶 동안 기쁘거나 행복한 일보다 슬프거나 불행한 일들이 많았을 경우에도 슬픈 것이다.

그러나 죽음 이후의 삶이 기쁘고 즐거울 수만 있다면 비록 죽음 이전의 삶이 힘들고 괴로웠다하더라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하루에도 수만 아니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지구 위에서 죽어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는지 돌아봐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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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우님주목경제 몇 가지 관찰 결과를 정리했다.
그 기사를 읽고 떠오른 생각을 적어본다.
솔직히 이 기사에 대한 분류를 어디에 넣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Opinion의 약자로 만든 분류 Op.에 넣기로 했다.

주목이 자원이며 한정된 자원이고 따라서 재산이며 우리가 소유해야할 가치있는 재산이라고 한다.(1~4)
또한 주목은 희소성이 높아지는 자원이며 ROI(수익성)를 따진다고 한다.(5~6)
주목은 점점 더 주목을 받기를 원하고 주목 받기 위해서 다른 자원들을 희생한다고 한다.(7~8)
주목을 받으면 다른 종류의 자원이 선물로 따라오고 주목을 잘 관리하고 주목에 의한 대가를 받도록 도와주는 것들이 주목 받게 된다고 한다.(9~10)

솔직히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은데... 좀 어렵다. 생각이 필요하다.
근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은 과연 나는 무엇에 주목하고 있느냐이다.
내가 무엇에 주목하고 있으며 내가 주목하고 있는 그것은 나에게 어떤 가치와 자원을 제공하는가?
과연 우리(인간?)가 궁극적으로 주목해야할 것은 무엇인가를 고민해본다.
최근 우리(인간?)에게 가장 공통적으로 주목을 끄는 것은 무엇일까?
여전히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입으며 어디서 살까를 고민한다.
인간이 생존하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대부분 세가지는 동시적으로 제공된다. 대충 살 곳이 있으면 먹을 것과 입을 것도 있게 된다.
하지만 살 곳이 없으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제한 받게 된다. 물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해결되어도 살 곳, 잠잘 곳이 해결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 개인의 선택에 의한 것은 제외하고서라도 말이다.
어쨌든 사람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이 해결된다면 우리는 다른 것에 주목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더 이쁘고 날씬해 질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큰 집에서 살 것인가?
어떻게 하면 노후를 편하게 보낼 것인가?

하지만 이런 주목이 우선일까?
요즘은 진정으로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에 주목하지 못하게 하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하면 도대체 네가 말하는 주목해야할 것이 무엇이냐고 물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우리가 지금 당장 주목해야할 것은 바로 '죽음 이후'라고...

왜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이 잘 거론되지 않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손으로 만져지지 않기 때문에?
개인적인 신앙 또는 신념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존재 여부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하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이 갑자기 죽거나 하면 사람들은 그때서야 잠시 막연하게나마 죽음 이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다지 오래 가지 않는다.

만약 죽음 이후에 무엇인가가 있다면(참고로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죽음 이후이 삶이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 먼저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주목이 선행되지 않은 채로 현재 누리고 있는 삶 가운데서 주목하는 그것이 과연 어떤 의미와 가치가 있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없기(내가 알기론) 때문에 우리는 죽음 이후에 대해서 들은 바도 없고 존재 여부도 확인할 수 없다.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환생이나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천국 또는 아무 것도 없다고 하든지 각자 자신의 신념에 따라서 판단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이 사람들에게 아무런 가치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건 지금 당장 그 주목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는 실질적인 혜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만약 죽음 이후가 존재한다고 가정하면 우리의 주목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나의 존재 이유가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하지 않는 사람들이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하도록 돕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태우님이 이야기한 주목경제 몇 가지 관찰 결과에서 언급되었듯이 내가 죽음 이후에 대한 나의 주목은 한정된 자원이고 소유해야할 가치가 있는 재산이다. 더구나 다른 주목 대상이 많은 가운데서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을 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매우 높은 희소성을 가진 자원이다. 또한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의 수익성은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것이므로 지금 분명하게 어떤 수익이 있다고 말할 수 없겠지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수익이라고 생각한다. 과연 나는 얼마나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하고 있으며 그 주목을 위해 다른 자원들을 희생하고 있는가? 죽음 이후에 대한 주목은 현세계에서는 누릴 수 없는 자원을 제공해주며 내가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있다면 아마도 거기에 주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이 오늘 나의 '주목'에 관한 고찰이다.

분명 다른 사람이 무엇에 주목하든지 그것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세상은 갈수록 다원화되어가고 상대적으로 변화되어져 가고 있다. 절대 진리라는 것이 사라져 가고 있지만 내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 근거 없는 허상이 아닌게 확실하다면 그리고 그 주목이 가져다 주는 보상이 너무나도 크다면 주목하도록 강요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에게 강력하게 권한다.
죽음 이후에 대해서 주목해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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