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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내에 미술 감상 동호회가 있다. 과연 어떤 작품들을 감상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동안의 프로젝트 때문에 굳어져 버린 뇌를 조금이나마 휴식하게 하기 위해서 따라가봤다.

주로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근처의 전시장을 찾는데 이번에는 얼마 전에 불타버린 숭례문 시장 알파문구 본점에 위치한 작은 전시장이었고 고현경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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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뚜껑이 있는 유리병 안에 독특한 상상체들이 들어가 있다. 갤러리에서 일하고 계신 분의 설명을 듣자하니 작가 주변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 가족, 선후배, 친구 등등 그들의 특징을 살려서 상상체들을 만들고 그들이 존재하는 자기만의 특정한 공간을 유리병으로 형상화했다고 한다.
단지 회화만이 아니라 고무찰흙 비슷한 것으로 그림으로 표현했던 상상체들을 직접 만들어서 유리병 안에 담아놓기도 했다. 역시 설명을 듣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상상체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아마도 거의 다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저리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나한테는 없는 것 같다.

올해 홍대를 졸업한 젊은 작가이지만 나름대로 자기만의 방식으로 표현해내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앞으로의 활동이 매우 기대가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학을 졸업한지 이제 만 5년이 지나 6년째가 된다. 그동안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을 한자리에 모아놓고 전시해본다면 정말 챙피하기 그지 없을 것 같다. 프로그래밍이란게 예술작품처럼 사람들의 눈과 영혼을 즐겁게 하지는 못하고 잘 인식할 수도 없지만 알게 모르게 그들의 삶을 편리하게 해주었던 부분들을 기억한다면 그동안 내가 했던 프로젝트들도 여전히 전시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오늘도 나는 전시작품 한가지를 완성하기 위해서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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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展

렘브란트와 바로크 거장들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번 전시회는 덕수궁 내에 있는 미술관에서 열렸다. 처음에 갔을 때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너무 많아서 작품 관람이 도저히 안될 거 같아 문앞에서 포기했었고 두번째 갔을 때 그나마 인파가 적어서 관람을 할 수 있었다.

방학시즌이라 당분간은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학생들과 학부모들로 인해서 혼잡하리라 예상된다.

그동안 인상주의라는 카테고리 안에 갇혀 있던 국내 미술 전시회 경향이 약간은 바로크 쪽으로 전향한 듯한 느낌이 들어서 매우 반가웠다. 그리고 함스부르크 왕가 컬렉션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작품들을 모아놔서 다른 전시회와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다.

전혀 몰랐던 함스부르크 왕가에 대해서 알아가는 재미도 있는 반면에 각 집권자들의 미술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컷었는지 알게되어서 정말 유익한 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더구나 신구약 성서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작품 하나하나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에 눈물이 고일 정도였고 이런 감동이 있는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이지 않나 싶었다.

비록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고 미술사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없지만 그림을 볼 때 느껴지는 화가의 혼신과 열정 때문에 전시회를 찾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학교 숙제로 어쩔 수 없이 찾아갔던 전시회가 아닌 자발적인 작품 감상이기 때문에 더욱 감동을 느낄 수 있지 않나 싶다.

예전에는 이런 전시회가 많지 않아서 매우 귀했지만 요즘에는 너무나 많이 좋은 전시회들이 열려서 다행인 반면에 전시회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아 있다. 전시회 입장료에 비해서 전시회 관람 환경은 너무나도 열악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자녀들을 동반한 부모들은 미술 전시회 관람시 지켜야할 에티켓 등을 충분히 주지시켜서 다른 사람들이 작품을 감상하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해야할 것이다. 물론 아이들은 작품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화가의 숨결을 느끼지 못하겠지만 그걸 할 수 있도록 도우는게 부모 또는 인솔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먼 미래에 국내에서 개최된 비엔나 미술사 박물관 전시회와 같은 전시회가 국외에서 한국의 미술 작품 전시회가 열리는 것을 보거나 소식을 접하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한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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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를 다녀온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서야 포스트를 남길만한 여유가 생겼다. 아니 어쩌면 머리 속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그토록 혼자서는 안 가리라고 했었지만 결국은 혼자 갈 수 밖에 없었다. 과연 언제 어느 전시회부터 혼자가 아닐 수 있을런지... 하지만 혼자였기 때문에 여유로이 3시간 동안 감상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이번에도 혼자서 전체적으로 관람을 한 뒤에 도슨트의 설명을 들었다. 역시 그냥 보는 것과 부족하더라도 설명을 듣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도슨트의 설명은 그다지 맘에 들진 않았다. 일단 사람이 많아서 멀리 떨어져서 설명을 들어야 하는데 조그만한 스피커를 들고서 설명하니 귀를 쫑긋 세우고 집중해서 들어야 했기 때문에 좀 준비가 부족하지 않나 싶었다. 물론 공짜로 그림 설명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지만 암튼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도슨트가 설명해줘서 알게 되었지만 전세계적으로 르네 마그리트 전시회가 열리는 전시장마다 꾸미는 사람이 이번 전시회도 직접 컨셉을 잡아서 꾸몄다고 한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을 커다란 대형 액자와 비슷한 조형물 안에 전시함으로써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들 중에서 그림 속의 그림이 있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이게끔 꾸몄다는 설명이었다. 솔직히 설명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걸 발견하지 못한 것이 좀 아쉬웠다. 나의 관찰력이 둔하기 때문이던가 아니면 의도한 사람이 일부러 느끼지 못하게 해놓은 것인지 아님 실수인지는 잘 모르겠다.

르네 마그리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장르 내지는 화풍의 작품을 만든게 아니라 시기별로 분명한 차이가 있어서 그런지 좀 더 색다른 느낌이었다. 대개는 그런 시기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던 것 같기 때문이다. 여러 작품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사용되어지는 자연과 사물 그리고 인물 만으로도 그의 작품의 독특함과 차별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된다.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작품은 기억이라는 작품인데... 한 여자 석고 두상의 오른쪽 이마 부분에 빨간 물감이 묻혀져 있고 그 옆에 장미꽃이 놓여져 있으며 뒤에는 하늘 배경인 작품... 작품을 만들고 나서 제목을 붙였는지 제목을 먼저 생각하고 나서 작품을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정말 제목 그 자체를 가장 훌륭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지나가면서 어린 아이에게 설명하기를 '정말 아픈 기억인가 보다'라고 했는데 속으로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

작품 제목에 대한 마그리트의 생각은 제목이 작품을 설명한다든지 제목에다가 작품을 맞추는 게 아니라 제목과 작품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 작품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바로 그런 점이 마그리트 작품이 갖고 있는 매력이 아닌가 싶다. 과거 바로크, 자연주의,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작품들에서는 색깔이나 빛 그리고 사물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마그리트의 작품과 같은 초현실주의 작품은 어떻게 표현하느냐보다는 무얼 표현하고 무얼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전시회를 위해서 읽었던 진중관의 미학 오디세이 2를 읽으면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작가가 그림 내지는 작품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를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그리트는 자신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전달하기 보다는 사람들이 작품을 보고 어떤 것을 생각하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또 그것을 원했던 것 같다. 똑같은 이미지들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반복적으로 등장시키지만 각각의 작품 속에서 다른 의미를 지니도록 하는 마치 마술처럼 그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다고 속임수를 쓴다거나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 외에도 초현실주의 작가들의 전시회가 종종 열렸으면 하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 전시회였다. 비록 그들이 작품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해도 그들의 작품들을 통해서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다양해지기를 바라기 때문인 듯 싶다.

마지막으로 그가 필름을 통해서 또 무언가 표현하려고 했던 노력들을 보면서 그리고 한 여자만을 사랑하며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하려고 노력했던 그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빨리 나도 여자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 커졌던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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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기다려온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지 솔직히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라고 해서 단지 미술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품을 기대했었는데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비록 단 하나 뿐이었어도 윌리엄 터너의 작품과 카미유 코로의 작품,
그리고 환상적인 프시케와 에로스(프랑수아 제라르 남작)를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전시장 및 작품들은
신성한 숲, 황금시대, 고전주의적 이상, 환상과 숭고미,
화가들의 이탈리아, 사냥과 전쟁, 초상과 풍경, 자연 고유의 미학
이렇게 8가지의 소주제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특정 화풍(예를 들어 바로크나 인상주의 등)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아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을 공수해온 전시회여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전시 작품의 통일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박물관 답게 미술사에 기록될 만큼 훌륭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이번 전시회도 전시장 내에 관람객들을 위한 적절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지 못해
수많은 관람객들이 처음 부터 끝까지 오랜 시간을 서서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
솔직히 일생에 단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한 작품들을 보는데 대충 보고 넘길 수는 있겠는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배려가 전혀 되지 않았다.
결국은 다시 한 번 들리게 만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전시회 관람 후 국립중앙박물관 공원에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각 작품들을 그려냈던 화가들이 지금까지 살아서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기위해 몰려오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당시에는 전혀 이름 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자신의 작품이 그리도 인정받게 될 것을 알았을까?
나는 과연 후세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기억하게 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있는가?

전시회장 출구에 적혀있는 문구를 여기에 옮겨 본다.

그림은 내 눈 깊은 곳에서 그려진다.
그림은 분명 내 눈 속에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림 속에 있다.
- 자크 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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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SIGN 2006

NOW(現)/Etc. 2006.11.08 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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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회 한국국제사인/디자인전이 지난 2006년 11월 2일부터 5일까지
코엑스 태평양홀과 인도양홀에서 열렸다.
솔직히 전공 분야도 아니고 관심 분야도 아니지만 궁금해서 갔었는데
디지털 프린팅 광고 뿐만 아니라 LED나 PDP 또는 조명을 이용한 광고
그 외의 각종 매체를 이용한 옥외 광고 등을 보면서
상품을 잘 만드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홍보하느냐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끼고 눈으로 보고 배울 수 있었다.
옛날 삼성화재에서 일할 때 각종 업체의 컬러 프린터와 플로터를 벤치마킹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경험했던 일반 플로터보다도 몇 배나 큰 플로터들이
계속해서 고품질의 영화 포스터 등을 인쇄하느라
전시장 안에는 잉크 냄새로 꽉 차있어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아크릴 판을 매우 세밀하게 파내는 기계도 있었고
LED를 이용한 간판 신기한 게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내가 보기엔 다 똑같아 보이는데 다들 자기들 제품이 더 잘 인쇄한다고
더 효과적이라고 홍보하는 모습들이 마치 시장에 나온 느낌이었고
이런 경쟁 구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들이 보기에 참 안쓰러웠다.
더구나 파리가 날릴 정도로 한산한 부스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들도 더러 있어서 매우 안타깝기도 했다.
그 업체도 나름대로 비싼 참가비를 내고 참가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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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것은 바로 '세계 3대 광고 수상작 전시회'였다.
칸느 국제광고제(International Advertising Festival)와 클리오상(Clio Awards)
그리고 뉴욕 페스티벌(The New York Festivals) 수상작 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광고마다 위트와 재치가 가득 담겨있어서 메시지 전달 능력이 얼마나 탁월한지 정말 훌륭했다.
그런 아이디어를 가지고 광고를 디자인해내는 사람과
그 디자인을 사람들 눈에 잘 띄도록 인쇄하는 기계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모여서 전시회를 만들어가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언젠가 나도 그런 전시회에 내 작품을, 내가 만든 상품을 홍보하고 싶은 소망이 있다.
나 혼자서 만든 것이 아니더라도 누군가 함께 만들었거나 내가 소속된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자랑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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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edi Baur Exhibition Ticket

Ruedi Baur Exhibiition

루에디 바우어 展(Ruedi Baur Exhibition) 2006.09.15 ~ 10.29 제로원디자인센터

길게만 느껴졌던 10월 첫 주는 어느새 훌러덩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우연히 대학로에 들렸다가 옥석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수요일 오후 종로구 혜화동 동숭아트센터 앞을 지나다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전시회 포스터가 내 눈에 띄었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글씨가 어지럽게 날 좀 봐달라고 움직이는 것 같은 포스터를 보면서 도대체 누굴까? 루에디 바우어.. 처음 보는 이름인데... 도대체 머하는 작자일까? 몹시 궁금했다.

솔직히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리고 전시회 설명을 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여태까지 이룬 업적(?)을 보면서 입을 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사이트에 가서 직접 보는 게 좋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때문에 그 정보 중에서 정말 내게 필요한 정보를 택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루에디 바우어는 그런 정보를 이미지화해서 어떻게 하면 쉽게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각종 인테리어부터 시작해서 표지판, 상품 등으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게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특색에 맞도록 이미지화해서 전혀 거부감이 없고 친근감을 최대화 시키는 작업을 한 것 같다.

그가 쓴 건지는 모르지만 그의 작품 속에 새겨진 글 중에서 가슴에 와닿는 글귀를 여기에 옮겨본다.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것은 덧없음과 영원함이 아닌 간결, 일시적 압축, 불확실함에 대한 미학을 창조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구현되는 장소의 지역성을 고려한 형식을 찾는 것이야말로 디자이너의 태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가치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국제시장의 논리를 따르지 않기 위함이다. 시각적인 제안을 창조하되 특정 장소에서만 존재하는 다른 곳에서 재생산될 수 없는 것을 하라. 그것이 바로 콘텍스츄얼 디자인이다.

그가 지향하고 주장하는 콘텍스츄얼 디자인이 가장 잘 드러난 프로젝트가 쾰른 본 공항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및 사인체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프로젝트도 매우 인상적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쾰른 본 공항이었다. 꼭 가서 직접 보고 싶을 정도이다. 더욱이 웹 개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공항 웹 사이트 디자인까지 통일된 모습으로 구현했다는게 정말 멋있었다. 나도 그와 함께 일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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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ne Comedy : A Retrospective of Bahc YiSo

박이소Bahc YiSo라는 작가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우연히 노블레스Noblesse.com라는 사이트에서 하는 이벤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당첨이 되는 바람에 가게 되었다.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작가 본인은 절대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했을 뿐인데 그것이 남들의 눈에 매우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비쳐진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그의 작품들이 평범하다거나 예술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럴 형편조차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작품들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다녀온 즉시 그때의 인상들을 기록해두지 않은 까닭에 지금 이곳에 옮길만한 내용이 없다. 하지만 내 정신과 마음과 생각과 영혼 깊숙히 간직하고 있는 느낌은 매우 강렬하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더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심장이 마비되어 죽게 하셨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또한 그가 하나님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서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와 죽음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과 작품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고민할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럴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가 던진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정직성'(Hon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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