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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때문에 - 10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밝은세상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에 이어서 세 번째로 읽은 기욤 뮈소의 작품...
지금까지 그의 작품은 나를 결코 실망시킨 적이 없다. 물론 번역이 잘되서인지도 모르지만 그만큼 원작이 받쳐주기 때문에 번역도 사는게 아닐까 싶다. 혹시라도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방법이 이전에 나왔던 것과 똑같은 방식은 아닐까 싶었지만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방법으로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면서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도록 만드는, 놓을 수 밖에 없다면 최대한 빨리 다시 책을 잡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마력을 갖고 있는 듯 하다.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번 작품은 일종의 치료제 역할을 하는 듯하다. 아니 치료제라기보단 치료를 도와주는 촉진제라고 할까? 암튼 과거의 상처로부터 회복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먼저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과 과거의 상처로부터 치유받으려는 의지가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만큼 심각한 상태까지는 아니더라도 나를 포함해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과거의 상처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괴로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상처는 타인에 의해서 입게 되는데 상처를 입힌 대상을 용서하는 것이 가장 빠른 치유의 지름길임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한계라는 것이 있기 마련이다. 어느 정도의 상처를 입혔느냐에 따라서 용서할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용서 하고 못하고에 대해서 뭐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선택이기 때문에... 하지만 낫고 싶다면 빨리 용서하는게 최선이다.

수많은 미디어들이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도록 우리들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분노를 일으키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불사르곤 한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을 이런 미디어로부터 보호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과 후세들의 미래는 너무나 어둡기 때문에...

다 읽어버려서 좀 아쉽다. 물론 또 다른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지만 말이다.

우리는 마치 호두 같아서, 깨뜨려야 속을 볼 수 있다. - 칼릴 지브란

'아직은 때가 아니야' 그 다음에는 '이미 너무 늦었어' 라고 말하다 보면 인생 최고의 시간이 다 지나간다. - 구스타프 플로베르

두려움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사람은 사랑, 믿음, 증오, 심지어 회의까지, 자기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없애버릴 수 있다. 하지만 삶에 집착하는 한 결코 두려움을 없앨 수는 없다. - 조셉 콘래드

행복해지려면 불행을 감수해야 한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어떻게든 불행을 피하기 위해 애써서는 안된다. 그보다는 어떻게, 누구로 인해 불행을 극복할 수 있을지 찾아봐야 한다. - 보리스 시룰니크

기욤 뮈소, 사랑하기 때문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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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 10점
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밝은세상

정확하게 1년만인듯 하다. 기욤 뮈소의 구해줘를 읽은 때가...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도록 소설을 쓰는 작가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올해 그의 최신작이 번역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다 읽게 되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스타일과 등장인물이 과거-현재-미래를 뛰어 넘는 것 등은 구해줘와 비슷하지만 주인공이 달라서 인지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현재에서 과거로 가거나 과거에서 미래로 가는 것 등은 어쩌면 너무나도 식상한 주제가 될 수 있는데 그리고 논리적으로 풀어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이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하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 늙은 엘리엇과 젊은 엘리엇, 그의 애인 일리나, 그리고 딸 앤지와 친구 매트 등 모든 등장인물들이 실존했던 것처럼 매우 생생하게 다가온다. 당장이라도 캘리포니아에 가면 그들을 만날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과거의 젊은 엘리엇은 사랑하는 애인 일리나를 살리기 위해서 미래의 늙은 엘리엇은 사랑하는 딸 앤지를 살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엇을 살리기 위한 친구 매트의 활약까지 지켜보면서 과연 나는 누구를 살리기 위해서 존재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된다.

이 소설은 단순한 사랑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행동들 하나가 미래에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어떤 결과든 그 결과가 나오게 되는 원인이 있듯이 오늘 내가 미룬 작업, 공부 등으로 인해서 언젠가는 야근을 해야한다거나, 시험에 떨어질 수 있는 여지를 두게 되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어떤 것을 포기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당장 눈앞에 보여지는 것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제 두달 뒤엔 33살이 된다.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3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봐야 세살바기 갓난 아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단 10년 아니 5년 전만으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래서 당시의 나를 만난다면 해주고 싶은 말과 돌이키고 싶은 일이 한두가지가 아닐 것이다. 그에 비하면 주인공 엘리엇은 진정 욕심이 없거나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 죽음을 앞에 두고 있을 때에는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저 사랑했던 여인만 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지에 도달하려면 어느 정도 나이여야 할런지 말이다.

예쁜 처녀 옆에 앉아 있어 보라. 1분처럼 지나간다. 뜨거운 프라이팬 위에 1분간 앉아 있어 보라. 1시간 처럼 지나간다. 이게 바로 상대성이다. - 알버트 아인슈타인
우리에게 시간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우리가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기 때문이다. - 세네카

올 가을에도 읽고 싶은 책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단 한 권을 읽더라도 시간을 허비하는 책이 아닌 책들을 선별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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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해줘
기욤 뮈소 지음, 윤미연 옮김/밝은세상

오랜만에 집어든 프랑스 소설... 베르나르 베르베르인간(2004, 열린책들) 이후로 처음이란 생각이 든다. 어차피 둘다 한국어로 번역된 것을 읽었으니 과연 진정한 프랑스 소설을 읽었다고 할 수 있을런지 싶지만 프랑스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함을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번역자가 들인 노력의 산물이 아닐까?

베르나르 베르베르도 그렇지만 기욤 뮈소라는 작가 이름도 매우 특이하다. 교보문고에서 진열된 책을 보면서 솔직히 후회하면 어쩌나 망설였었는데 아주 재밌게 읽었다. 프랑스에서는 2005년에 출간되서 2주만에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78주 연속 베스트셀러에 있었다고 한다. 현재 국내에서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국외소설부문 10위권 안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 소설은 정말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도록 쓰여졌다. 옮긴이의 말에도 언급되었지만 영상세대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요소들이 듬뿍 담겨져 있다. 만약 쉬는 기간에 이 책을 붙잡았다면 아마도 밥도 안 먹고 끝까지 한 숨에 읽어버렸을테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어쨌든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4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다 읽어버릴 정도로 푹 빠져버리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낀다. 때론 시간 낭비라고 여겨질 만큼 최악의 소설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때때로 소설만큼 책 읽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도 없다고 본다. 각종 처세술, 재테크, 그리고 성공 사례 등을 담은 수필 등 실용서들이 판을 치고 있는 서점가에 사람들의 메마른 감성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저자는 그런 사람들의 소리없는 외침과 절규를 소설로 그려내고 있는 것 같다. '구해줘'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절박감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소리라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연약한 모습을 완벽하게 가리운 채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진정 그런 그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는 희망과 빛이 필요하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그것이 사랑 뿐임을 이야기 하는 듯 하다. 죽음도 운명도 막을 수 없는 것은 오직 사랑이라고 말이다. 물론 종교적으로 성경적으로 보자면 약간 부족하지만 말이다. 어쨌든 소설 중간 중간 등장하는 가슴에 와닿는 문구들이 수두룩한데 그것들을 그냥 지나쳐 버린 것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몇 개만 추려서 옮겨 본다.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해본 경험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자격을 충분히 갖춘 것이다.

- 기욤 뮈소, <구해줘> 중에서...


우리는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 앨버트 코헨


오늘은 내 남은 인생의 첫 날이다.

- 센트럴파크의 어느 벤치에 누군가가 새겨놓은 낙서


뉴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 헤맨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찾아 헤매고, 여자들은 남자들을 찾아 헤맨다.

뉴욕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뭔가를 찾아 헤맨다. 그러다 때로는 누군가는 자신이 찾아 헤매던 그 누군가를 찾아낸다.

-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단 몇 시간일지라도 짜릿한 행복의 광휘는 이따금씩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환멸과 권태의 일상을 충분히 견디게 해준다.

- 기욤 뮈소, <구해줘> 중에서...


인간은 앞을 바라보면서 살아야 하지만 자신의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뒤를 돌아봐야 한다.

- S.A. 키에르케고르


사람들이 저지르는 악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지만 선은 흔히 그들과 함께 땅에 묻힌다.

- 셰익스피어


죽음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그리고 죽음의 시간만큼 불확실한 것은 없다.

- 앙브루아즈 파레


이 소설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결말이다. 샘과 줄리에트가 둘 다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는 사실 만으로도 너무 감격스러울 따름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결말이 어떻게 될 것인지 정말 줄리에트가 죽을 것인지 아니면 샘이 대신 죽을 것인지 궁금해하고 아무도 죽지 않기를 그들이 끝까지 살기를 바라게 된다. 저자는 그런 독자들의 심리를 꿰뚫고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매듭지었다. 물론 소설이기 때문에 그래야 독자들이 다음 번 책을 또 읽어줄거라는 기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되었지만 조만간 영화로 제작된다고 했는데 과연 누가 샘과 줄리에트의 역을 맡게 될 것인지 궁금하다. 정말 소설 속에서 그려진 것과 같은 배우들이 있을까? 혹시 그들의 연기로 말미암아 소설에서 느꼈던 느낌들이 훼손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영화를 통해서 수익을 얻어내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만큼 상세하지 못할 것이란걸 안다. 하지만 기대하게 된다.

샘과 같은 사랑을 하고 싶다. 간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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