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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d Mehldau - Highway Rider [2CD] - 10점
브래드 멜다우 트리오 (Brad Mehldau Trio) 외 연주/워너뮤직코리아(WEA)

정말 오랜만에 뒤늦은 앨범 리뷰를 적어본다. 솔직히 내가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관련된 교육을 받은 경험도 없는 주제에 무슨 앨범 리뷰인가 그냥 지극히 주관적인 느낌의 나열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장마가 시작되서인지 비가 오고 비가 오면 까페라떼가 고파지고 까페라떼를 마시기 위해 커피전문점에 가면 어쩔 수 없게 듣게 되는 음악이 재즈이다. 문득 재즈가 듣고 싶어 검색하다보니 Brad Mehldau의 새 앨범이 나온 것을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다. 재즈 중에서도 특정 아티스트의 귀에 익은 음악만 질리도록 듣는 편이라 그동안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구가 없었다는 것이기도 하다. 사실 클래식과 재즈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들을 때마다 그 느낌과 깊이가 다르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음악에 대한 갈증이 다른 장르에 비해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한동안 듣기 편한 유러피안 재즈 트리오의 앨범 모나리자에 익숙해져서인지 브래드의 조금은 거칠기도 한 피아노 건반 터칭과 약간의 불협화음이 귀에 거슬리는 음악에 적응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역시 브래드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그의 연주를 듣다보면 마치 시대를 초월하는 것 같으면서도 기본에 충실하기 때문에 결코 괴팍스럽거나 귀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철저한 클래식 기본 바탕 위에서 연주되어지는 그의 피아노 연주는 그 어떤 연주자들이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그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더구나 그의 연주를 돋보이게 하는 다른 세션들, 약간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으면서 묘한 어울림을 만들어내는 그의 음악은 이 시대 재즈를 대표한다는 느낌이다.

앨범 제목은 Highway Rider 이지만 앨범 타이틀 곡은 Sky Turning Grey(For Elliot Smith) 인데 2003년에 안타깝게도 자살한 음악가 엘리엇 스미스를 추모하는 곡이다. 

솔직히 앨범 리뷰를 쓰려면 최소한 앨범에 대한 정보도 찾고 곡마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도 알아보고 해야 하는데 사실 그러기엔 너무나도 부족하다. 만약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전문가의 리뷰를 검색해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다.

앨범은 한층 더 성숙한 느낌이고 더 스케일도 커진 느낌이다. 한편 아쉬운 것은 브래드의 앨범이 대부분 스튜디오 작업이라 라이브한 그의 연주가 고픈 것이다. 언제 내한 공연을 하게 될지 모르지만 절대 놓치지 않도록 안테나를 빼두어야 할 것 같다.

예빛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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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새'라는 단어구도 이제 식상하고 '시간이 빠르다'는 말도 당연한 이야기라 적기가 무색하다.
적어도 오늘 2010년 6월이 가기 전에 블로그에 짧게라도 글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으로 로그인을 했다.
블로그를 위해 도메인을 사고 벌써 몇년째인지...
하지만 처음의 그 마음은 유지하기가 어려웠다.
더군다나 미투데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이용하는 이후로는 더 어려워졌다.

긴 글을 쓰는 것은 그만큼 많은 생각을 요구하고 준비를 필요로 한다.
반면에 짧은 글로 그때 그때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 것은 비교적 쉬운 편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장문의 후기를 적기보다는 짧은 한 마디로 표현하는 게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나 블로그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연동을 생각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따라서 내일 2010년 7월부터 이 블로그는 미투데이와 연동을 시킬 예정이고 트위터와 연동을 하게될 예정이다.

블로그에 무엇을 담을지는 좀 더 천천히 고민해봐야겠지만
이전과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
삶 가운데서 예쁜 빛깔을 찾아가고 그것을 전달하는 매개체로서
보다 더 성숙한 모습으로 탈바꿈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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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

NOW(現)/Books 2010.02.01 17:33
당신 없는 나는? - 10점
기욤 뮈소 지음, 허지은 옮김/밝은세상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 - 10점
기욤 뮈소 지음, 김남주 옮김/밝은세상

2010년을 맞이해서 첫 포스팅이 독서 후기인 것이 나름 기대스럽다. 물론 예전만큼 디테일한 독서 후기를 적기엔 여러가지로 장애 요인들이 많긴 하지만서도 최소한 월 1회 포스팅을 하겠다던 연초 작심이 이미 무너져버렸기 때문에 2월 첫날인 오늘 포스팅을 아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내 번역본 출간 순서대로 보면 2006년 <구해줘>(윤미연 역), 2007년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전미연 역), 2007년 <사랑하기 때문에>(전미연 역) 3부작에 이어서 2008년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김남주 역), 그리고 작년 2009년 말 <당신 없는 나는?>(허지은 역)을 발간해온 기욤 뮈소라는 프랑스 소설 작가의 작품들은 나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전 그의 작품에 대한 포스팅에도 언급했다시피 그의 작품들은 마치 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면서도 작품 중간 중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밑줄을 긋거나 노트에 옮겨적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글들이 너무나도 많다. 그러나 도저히 작품의 흐름을 끊을 수 없어서 그냥 지나칠 수 밖에 없는 게 매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소설 속에 담긴 서스펜스와 스릴, 그리고 로맨스와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를 통해 상처받고 치유받고 이해되는 일련의 과정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조금이나마 키울 수 있지 않은가 싶다. 물론 자칫 가벼워보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나에게는 TV를 포기하고 그만한 시간을 투자해서 읽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된다.

사실 <사랑을 찾아 돌아오다>는 꽤 오래전에 책을 사두고 읽지 않다가 이번에 <당신 없는 나는?>을 읽고 난 후에 다시 손에 들게 되었는데 전작들에서 느껴졌던 공통점들이 가장 최근작에서는 조금 감추어져서 그의 작품이 한층 더 성숙하게 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프랑스 원어로 이 소설을 읽는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데... 작가는 남성인 반면에 번역자들이 모두 여성인 것을 보았을 때 그의 글은 남성 번역가들보다는 아무래도 여성 번역가들에 의해서 번역될 때 그 빛을 발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물론 프랑스 소설 남성 번역가들이 여성 번역가들에 비해서 그 수가 적거나 아니면 더 번역이 깔끔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한동안 책장이 술술 넘어가는 소설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그의 다음 작품이 기대가 된다.
책의 내용이나 줄거리 등에 대해서는 이미 온라인 서점이나 각종 매체들을 통해서 접할 수 있으므로 이만 줄일까 싶다. 어쩌면 책의 내용 중에 밑줄이나 발췌하고자 했던 것들을 모아서 다시 포스팅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과연 가능할런지... 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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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2009년 마지막날이다. 내일이면 2010년이구나.

한해를 돌아보면 올해만큼 또 아쉬움이 많고 후회가 많고 안타까움이 많은 해는 없었던 거 같다. 언제나 매년 연말이 되면 그렇지만 올해는 더더욱 그렇다. 아마도 맡은 일의 결과가 그닥 좋지 않아서가 아닐까 싶다. 이래저래 핑계대고 싶지만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한 해를 돌아볼 수 있으면 좋은데 그러지 못해서 안타깝다. 매년 이렇게 한 해를 보내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남에게는 관대할지라도 나 자신에게는 좀 더 철저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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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의 대학

NOW(現)/Etc. 2009.12.02 21:19
거의 일년 만에 연극을 본 듯 하다. 아내의 생일을 맞이하여 딸 아이를 부모님께 맡겨드린 채로 아내와 함께 연극을 봤다. 요즘 웃을 일이 많지 않은 아내에게 웃음을 안겨주고자 고르다 고른 연극은 바로 "웃음의 대학"이었다.

알아본 결과 작년 동숭아트센터 동숭홀에서의 공연에는 검열관 역 송영창, 극작가 역 황정민이 연기를 했었고 올해는 봉태규, 조희봉씨가 극작가로 검열관은 송영창, 안석환씨가 더블캐스팅으로 11월 공연에 이어 다른 공연장에서 연장 공연중이었다. 어제 본 공연은 검열관에 송영창, 극작가에 봉태규의 출연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안석환의 연기를 보고 싶었으나 흔치 않은 기회이므로 다른 날을 기약하기도 곤란했다.

그동안 포스팅했던 독서 후기나 영화 관람 후기와 마찬가지로 연극의 내용이나 줄거리 등에 대해서는 그닥 언급하고 싶지 않다. 두 배우의 연기에 대해서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것은 그닥 내키지 않는다. 사실 연극에 대해서는 단지 대학시절 교양과목으로 연극영화개론 강의를 들은게 전부인 나로서는 연극에 대해서 평할 만한 주제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연극을 통해서 깨달은 점이라든지 연극을 통해서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충격적으로 다가온 부분은 검열관의 요구사항대로 변경해온 극작가의 전투라는 부분이다. 극작가는 희극을 쓰는게 목적이다. 마치 검열관의 요구대로 극본을 고치는 것이 마치 타협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결국 그것은 계속 희극을 쓰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불태우게 했다는 것이다.

극작가의 그러한 선택이 과연 옳은 결정이었는지는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희극을 쓰는 것을 관두던가 검열관의 요구를 무시한채 마음대로 만들어서 잡히던가 둘다 궁극적인 희극을 쓰는 것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러나 검열관의 요구대로 변경하는 것은 계속 희극을 쓸 수 있는 것이다.

프로그램 개발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종종 돈과 시간과 타협해야 할 경우가 종종 생기기 마련이다. 영업적으로 접근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얻기 위해서 고객의 요구사항을 적절하게 들어주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마련이다. 고객의 요구사항을 모두 들어주다가는 결국 정해진 기간 내에 처리할 수 없게 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개발만 할 수 있다면 고객의 요구사항이 수도없이 변경되고 해당 요구사항을 반영하기 위해서 수도없는 설계를 번복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과연 극작가와 같은 모습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물론 희극을 쓰는 것과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연극을 통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평생 웃어본 적이 없는 검열관을 웃게 만드는 작품을 쓴 극작가의 모습에서 과연 평생 만족스러운 프로그램을 접해본 적이 없는 사용자를 만족스럽게 편리하게 해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본 적이 있는지 자문하게 한다. 그래서 전쟁터에 나가는 상황에서도 절대로 죽으면 안된다는 부탁과 훗날 자신이 기꺼이 배우가 되겠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사람을 감동시키는 프로그래밍은 과연 어떤 것일까 고민하게 된다.

물론 프로그램 개발 뿐이 아니다. 신앙에도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마치 쉽게 동화되는 것처럼 타협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은 상대방을 구원하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일에 대해서 접근하는 방법을 달리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좀 더 고민이 필요하고 나눔이 필요한 부분이다.

공연을 통해서 고민하고 생각해야할 것은 많고 작품은 일단 만족스러웠으나 공연장은 매우 실망스러웠다. 물론 대학로의 소극장이 대개 그렇겠지만 역시 우리나라의 공연장의 현실은 극과 극을 달리고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공연장에 대해서는 더이상 적을 이유가 없을 듯 하다.

앞으로 또 언제 연극을 볼 기회가 올지 모르지만 비록 연극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더라도 이번 작품처럼 보는 동안 웃을 수 있으면서 인생에 대해서 삶의 태도에 대해서 고민하게 만들고 더 나은 삶을 추구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들이 많았으면 한다. 그런 질좋은 문화 유산을 딸 아이에게 선물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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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NOW(現)/Etc. 2009.12.01 09:24
2009년 12월 1일...
어느새 시간이 흘러 2009년도 한달을 남겨두고 있다. 아직 2009년을 반추하기에는 좀 더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아직은 이르다. 하지만 또 미루고 시간을 보내다보면... 또 마찬가지로 훌쩍 지나갈 수 있기 때문에 하루 정도 날을 잡아야 한다.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았던 2009년... 하루에 다 정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루면 결국 또 반복되기 마련이다. 이제 실수 들이 용납되긴 어려운 나이이다. 무언가를 시도해보기에는 애매한 시기이다. 분명하게 실행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우고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건강이 최우선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뒤로 미룰 수도 없는 문제이다. 앞으로 40년 최소한 30년은 더 달릴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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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어쩌면 가슴을 뭉클거리게 만드는 단상 위에서의 설교보다도 더 중요한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내 입장에서는 그저 개척의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일종의 테스트가 아니었을까라는 추측마저 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테스트의 장을 만들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측면에서 내 책임도 전혀 없지는 않다.
인간이란 본래 이기적인 것이다. 가끔은 그것이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기도 한다는 게 무척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다들 그동안 문제를 알고 느끼면서도 정작 표면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그냥 수면 아래에 있도록 방치해왔다는 생각이다.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어쨌든 지난 일은 어떻게 되돌릴 수 없는 것이다. 자꾸 지나간 일을 언급한다고 해서 일이 해결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현재이고 현재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미래는 결정된다.

먼저, 관계를 위해서는 만남이 필요하다. 말만 그럴듯한 만남이 아니라 서로 만남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내야하고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것이 필요하다. 그래 뭉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만 한다. 그게 필요하다. 아직은 젊고 충분히 가능하다. 결코 늦지 않았다. 이대로 주저 앉을 수는 없다. 떠날 사람은 떠나고 남을 사람은 열심히 해야 한다. 그게 바른 이치이다.

과연 만나서 무엇을 해야 할까? 그것은 나중에 고민하고 일단은 만나야 한다. 우선은 그게 가장 급선무이다. 그동안 단절된 소통의 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각자 자신의 처한 환경과 상황에 대해서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도가 너무 없었다. 너무 흩어져 있었다. 다시 모여서 무너진 성벽을 재건해야 한다.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모두 같이 해야 한다. 우선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 먼저 나서야 한다. 그래 다행이다. 너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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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가 어울릴까, 벌써가 어울릴까...
어쨌든 2009년 10월이다.
그것은 이제 2009년이 3개월 남았다는 뜻이다.
또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3개월 후에는 한 살의 나이를 먹게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정확히 삼십대 중반이다. 인생에서 삼십대 중반이라는 시점에서 가져야할 마음자세 내지는 태도는 어떤 것일까를 가만히 고민해본다. 하지만 너무 오래동안 고민할 여유는 없다. 안타깝게도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그렇게 오랜시간 고민할 수 있는 여유를 갖도록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는다.

올 한 해동안 연말 즈음에는 무언가 이루고자 했던 일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또 내년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9개월을 돌아보면 어느 한가지에 집중하지 못하고 너무 많은 일들에 관심과 힘을 분산되어 결과적으로 이룬 것이 없어보이는 듯 되어버렸다.

아뭏튼 남은 3개월 동안 지난 9개월을 철저하게 되돌아 보고 내년을 그리고 3년 뒤, 5년 뒤의 계획을 세우고 올해를 마무리해야 한다. 올해 계획은 그렇게 수정해야할 듯 싶다. 보다 더 철저한 미래 계획을 세우는 것이 수정된 올해의 목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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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NOW(現)/Books 2009.09.22 17:36
1Q84 1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1Q84 2 - 10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문학동네

책을 읽고 나면 항상 후기를 올려야 한다는 일종의 압박을 스스로에게 주곤 한다. 아니 어쩌면 후기를 써야한다는 의무감에 책을 읽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물론 한동안 그 의무감을 잊은채 책을 멀리했던 것 같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런 나에게 다시 책을 집어들어 책장을 넘기도록 했다.

상실의 시대를 읽고난 이후로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닥 호감을 주지 못하는 작가로 분류되어 버렸다. 그 이유인즉, 작품 전반에 깔린 허무주의가 가장 크지 않을까 싶다. 이번 작품에서도 상실, 공백 등 무언가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탈출할 수 없는 독방에 갇혀진 느낌이랄까, 주인공들의 삶이 너무 우울하고 외롭고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 등장하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엮어내는 기술은 정말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과 여건만 된다면 아마 책을 놓지 않고 계속 읽었을 게 분명하다. 이번 작품은 마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를 떠오르게 했고, 이외수의 <괴물>을 떠오르게 했다. 비슷하다라기 보다는 무언가 현실의 문제를 적절하게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든다. 따라서, 다분히 철학적이다. 물론 조금은 지리하게도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기도 하다. 그에 비해서 결말은 흐지부지 끝내버린 거 같은 아쉬움을 준다. 어쩌면 그게 이번에 그의 작품에서 주고자 하는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암튼 이전의 상실의 시대만 놓고 비교해봤을 때 결말은 허무로 끝나지 않는다. 더나은 미래를 암시한다. 물론 그것을 독자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거겠지만 그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그래야 아오마메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의 만남은 아오마메의 바램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음악이나 식물과 동물들, 어느 것 하나도 아무런 개연성이 없이 등장시키지 않는 치밀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어떤 의미로 등장시키고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까지도 파고 들자면 들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만한 능력을 갖고 있지 않다. 아마도 그렇게까지 작품을 분석할 줄 알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에 사용된 음악이나 소품들이 적잖이 작품을 접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과연 그 사람들은 그것들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어졌는지 고민을 해볼까 싶기도 하다.

혹시라도 이 작품이 영화화된다면 어떻게 묘사될까 궁금한 부분들이 있다.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자들의 도시>의 영화를 아직 보지 않은 것은 글로써 상상할 수 있었던 이미지들이 손상될까 싶어서였다. 어쩌면 손상이라기 보다는 비교할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지금은 1984년도, 1Q84년도 아닌 2009년이다. 그리고 달이 하나인 세상에서 살고 있다. 그러나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현실과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2Q09년에서 사는 사람들, 과연 어느 쪽에 사는 것이 옳고 그른 것일까? 대다수의 사람들이 사는 것이 진짜일까? 갈수록 사람들은 이런 철학적인 문제를 고민하지 않고 있다. 어쩌면 시간낭비일 수도 있는 문제들... 그러나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설명해주지 않으면 모른다는 것은 설명해줘도 모르는 거야.
작품 속에서 덴고가 아버지를 만났을 때 아버지가 한 말이다. 그 이후로 계속 반복해서 등장하는 문장 중에 하나인데 하루키가 작품을 통해 강조하고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세상을 살다보면 설명해줘도 알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설명해주지 않아서 모르는게 아니라 고민하고 생각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모르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국 그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건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상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그것은 독자가 고민해야할 몫이란 뜻이 아닐까 싶다.

좋은 작품이기는 하나 그저 단순히 읽어버리기에는 너무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한편의 스릴러와 공포영화를 본 듯한 느낌을 가질 수도 있고 때문에 기분이 나빠질 수도 있는 작품이다. 때문에
이 책을 누군가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하기는 좀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읽는다는 것을 만류하지는 않을 것 같다. 자칫 정신건강에 해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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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1일

NOW(現)/Etc. 2009.08.31 19:34
암묵적으로 매월 말일을 포스팅 데이로 정한 듯 싶다. 적어도 월1회 포스팅을 해야할 것 같은 심적인 부담 때문일까? 암튼 어느새 8월 마지막 날이다.

올해 8월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졌다. 내가 속한 세상에서 사회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그중에 아는 것도 있고 관심있는 것도 있었지만 지금 당장 기억에 남는 거라곤 나와 연관된 일들 뿐이란 생각이다.

사람은 본래 이기적이다.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태어났다. 때문에 남을 생각하고 희생하고 헌신하는 일이 결코 익숙하지 않다. 종종 그런 사람들을 보게 되면 정말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곤한다. 올해 8월 유난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아마도 커가는 딸 덕분이 아닐까 싶다. 귀한 생명을 얻었지만 그만큼 그 생명을 보존하고 유지하고 보다 더 아름답게 지키기 위해서는 그만한 희생이 따르게 된다.

최근 가장 큰 관심사이면서 고민 중에 하나는 딸이 텔레비전을 보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물론 주변의 어른들이 텔레비전을 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아이는 텔레비전을 멀리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퇴근하고 집에와 텔레비전을 보면서 휴식을 취하고 싶은데 그것을 포기하고 아이와 함께 무언가 같이 하면서도 텔레비전을 보는 것 이상의 즐거움과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것이 어떤 일일까? 결코 쉽게 답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란 생각이다.

더 가치있는 일을 위해서 덜 가치있어 보이는 일은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무엇이 더 가치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없을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 텔레비전을 보는 일보다는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함께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한다.

이제 곧 첫돌이 될 딸아이와 함께 텔레비전 대신에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야할 책임과 의무가 나에게 있다. 그것을 기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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