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열기..


그토록 기다려온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
너무 기대를 해서 그런지 솔직히 약간은 실망스러웠다.
루브르 박물관 전시회라고 해서 단지 미술 작품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품을 기대했었는데 역시 무리였던 것 같다.
하지만 비록 단 하나 뿐이었어도 윌리엄 터너의 작품과 카미유 코로의 작품,
그리고 환상적인 프시케와 에로스(프랑수아 제라르 남작)를 볼 수 있었던 것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전시장 및 작품들은
신성한 숲, 황금시대, 고전주의적 이상, 환상과 숭고미,
화가들의 이탈리아, 사냥과 전쟁, 초상과 풍경, 자연 고유의 미학
이렇게 8가지의 소주제에 의해서 구성되었다.

특정 화풍(예를 들어 바로크나 인상주의 등)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아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을 공수해온 전시회여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전시 작품의 통일감은 떨어진다.
하지만 세계 최고의 박물관 답게 미술사에 기록될 만큼 훌륭한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역시 이번 전시회도 전시장 내에 관람객들을 위한 적절한 휴식 공간이 마련되지 못해
수많은 관람객들이 처음 부터 끝까지 오랜 시간을 서서 작품을 감상해야 했다.
솔직히 일생에 단 한 번 볼 수 있을까 말까한 작품들을 보는데 대충 보고 넘길 수는 있겠는가?
잠시 쉬었다가 다시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배려가 전혀 되지 않았다.
결국은 다시 한 번 들리게 만들려는 의도가 숨겨져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전시회 관람 후 국립중앙박물관 공원에서 가을 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각 작품들을 그려냈던 화가들이 지금까지 살아서
후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기위해 몰려오는 모습을 본다면 어떤 느낌일까?
당시에는 전혀 이름 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까?
자신의 작품이 그리도 인정받게 될 것을 알았을까?
나는 과연 후세에 단 한 사람이라도 나를 기억하게 할 그런 작품을 만들고 있는가?

전시회장 출구에 적혀있는 문구를 여기에 옮겨 본다.

그림은 내 눈 깊은 곳에서 그려진다.
그림은 분명 내 눈 속에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림 속에 있다.
- 자크 라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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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들어 처음 가본 졸업전시회는 서울여대 산업디자인학과 졸업전시회였다. 작년에 숙명여대 디자인학과 졸업전시회에 다녀왔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작품들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더구나 같은 여대라서 그런지 공통적인 작품들이 눈에 많이 띄였다.
나름대로 많이 고민하고 만든 흔적들이 보였지만 사회 생활을 해본 나로서는 그들의 그런 열정이 사회에 나아가서 얼마나 빛을 발하게 될 수 있을까란 의구심에 사로잡혀 작품들에 너무 낮은 점수들을 준 것은 아닌지 싶다. 물론 나의 점수가 절대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그래도 단순한 모방보다는 창의성이 보이는 작품들이 몇몇 보이기도 했고 많은 고민과 연구 끝에 나온 작품처럼 보여서 누가 만들었는지 직접 만나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아는 사람이 있는 관계로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목금토 갤러리 4층에 전시된 공간 디자인 축소 모형들이었는데 공간에 대한 이해와 분석, 공간을 채우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상품 등을 고려한 설계들이 진정 많은 돈과 시간을 들인 것도 모자라 땀까지 흘려가며 만든 흔적이 매우 돋보였다. 솔직히 좀더 공간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있었더라면 그들의 작품에 대해서 좀 더 할 이야기가 있을텐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
언젠가 그들이 디자인한 제품이나 건물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되는 날이 꼭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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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edi Baur Exhibition Ticket

Ruedi Baur Exhibiition

루에디 바우어 展(Ruedi Baur Exhibition) 2006.09.15 ~ 10.29 제로원디자인센터

길게만 느껴졌던 10월 첫 주는 어느새 훌러덩 지나가 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 우연히 대학로에 들렸다가 옥석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수요일 오후 종로구 혜화동 동숭아트센터 앞을 지나다가 전혀 들어보지 못한 작가의 전시회 포스터가 내 눈에 띄었다.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글씨가 어지럽게 날 좀 봐달라고 움직이는 것 같은 포스터를 보면서 도대체 누굴까? 루에디 바우어.. 처음 보는 이름인데... 도대체 머하는 작자일까? 몹시 궁금했다.

솔직히 그의 작품을 보면서 그리고 전시회 설명을 하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대단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여태까지 이룬 업적(?)을 보면서 입을 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사이트에 가서 직접 보는 게 좋다.

요즘은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때문에 그 정보 중에서 정말 내게 필요한 정보를 택하는 일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루에디 바우어는 그런 정보를 이미지화해서 어떻게 하면 쉽게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전달할 것인지를 고민하고 각종 인테리어부터 시작해서 표지판, 상품 등으로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게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특색에 맞도록 이미지화해서 전혀 거부감이 없고 친근감을 최대화 시키는 작업을 한 것 같다.

그가 쓴 건지는 모르지만 그의 작품 속에 새겨진 글 중에서 가슴에 와닿는 글귀를 여기에 옮겨본다.

시간의 흐름을 시각화하는 것은 덧없음과 영원함이 아닌 간결, 일시적 압축, 불확실함에 대한 미학을 창조하는 것이다.

프로젝트가 구현되는 장소의 지역성을 고려한 형식을 찾는 것이야말로 디자이너의 태도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이는 가치를 부여하면서, 동시에 국제시장의 논리를 따르지 않기 위함이다. 시각적인 제안을 창조하되 특정 장소에서만 존재하는 다른 곳에서 재생산될 수 없는 것을 하라. 그것이 바로 콘텍스츄얼 디자인이다.

그가 지향하고 주장하는 콘텍스츄얼 디자인이 가장 잘 드러난 프로젝트가 쾰른 본 공항의 비주얼 아이덴티티 및 사인체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다른 프로젝트도 매우 인상적이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쾰른 본 공항이었다. 꼭 가서 직접 보고 싶을 정도이다. 더욱이 웹 개발을 하고 있는 나로서는 공항 웹 사이트 디자인까지 통일된 모습으로 구현했다는게 정말 멋있었다. 나도 그와 함께 일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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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그린 화가들 인상파 거장전(French & American Impressionists in the Brooklyn Museum)

Ticket

방학시즌인데다가 토요일이라서 엄청 학생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을 했지만 자칫 놓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수많은 학생들로 인해서 진지하고도 여유로운 감상을 할 수 없었다. 더욱이 이번에 처음 느낀 것인데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의 단점은 감상 중간에 잠시 앉아서 쉴 공간이 없어서 매우 다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전시 작품 수가 현저히 많고 전시장이 층별로 이뤄진 다른 전시장, 예를 들어, 서울시립미술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에는 층간에 충분히 쉴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에 하루 종일 감상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것을 처음 느끼게 되었다.

어쨌거나 이번 전시회의 가장 큰 가치는 그동안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접하기 쉽지 않았던 미국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과 국내에 잘 알려져있는 프랑스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들 중에서 그동안 전시되지 않았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미국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은 역시나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동안 너무나 프랑스와 유럽 작가들의 작품에만 눈이 길들여져서 그런지 미국 인상주의 작가들의 작품 속에서 그 차이를 발견하는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조금은 부드러운 듯이 마치 유럽의 인상주의 이전의 작품들을 보는 듯 했다. 물론 아직도 내가 작품을 볼 때 어떤 표현기법에 의해서 미술연대를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에 의해서 구분하기 때문은 아닌지 싶다. 아뭏튼 고전 미술이라고 하면 무조건 네덜란드,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의 유럽을 떠올렸던 나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박살내버린 전시회라고 평가하고 싶다.

이번 전시회에서 또한 눈여겨 볼만한 것은 바로 전시작품들이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에서 왔다는 점이다. 미술관이라고 하면 프랑스의 루브르박물관 밖에는 모르던 내가 새롭게 알게된 미술관이다. 사진에서 느껴지는 장엄하고 정교해보이는 건축양식이 죽기 전에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미술관 중에 하나가 되어 버렸다.

다가오는 2006년 10월 24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최되는 '루브르 박물관 걸작선'이 정말 기대가 된다.(관련기사:중앙일보 2006년 2월 17일자) 부디 혼자 가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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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AT CENTURY PICASSO

THE GREAT CENTURY PICASSO

샤갈Shagal과 마티스Matisse의 전시회를 놓친 나로서는 이번 피카소Picasso 전시회마저도 놓칠까봐서 사전공부할 틈도 없이 즉흥적으로 미술관을 찾았다. 덕분에 숨통이 약간은 트인 듯 하다. 프로젝트 때문에 질식하기 일보직전이었으니 말이다.

예상했던대로 그의 삶을 모르고 그림을 이해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물론 그의 삶을 안다해도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말이다. 다만 그의 작품을 볼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누구도 그의 작품을 완전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는게 최선이 아닐까 싶다.

관람 내내 궁금했던 것은 그와 함께 동거하면서 그의 모델이 되어준 수많은 여자들은 과연 그의 곁에 있으면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하는 것이다. 그의 곁에 있으면서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면서 나름대로 그들은 즐거워 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그의 여성편력이 그의 작품들이 풍성해지도록 큰 기여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여성편력은 사뭇 아쉬움이 남는다.

그의 작품들에 대해서 개인적인 느낌들을 주절주절 늘어놓는 것은 차마 못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의 작품들의 현대 미술에 끼친 영향력 등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테니 말이다. 단지 미술관의 분위기와 전시회 전반적인 느낌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혼자였기 때문에 시간에 쫓기지 않고 여유를 갖고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관람객들로 인해 정신이 없을 정도였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처음이었지만 겉으로 보여지는 건물 외관은 대학시절 본관의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여 마치 대학시절 교내 전시회에 온 느낌이었다. 미술관의 2층과 3층에 구성된 전시관은 함께 동거했던 여인들을 주제로 섹션을 구분하였으며 각 섹션별로 벽 색상을 달리함으로써 관람객을 배려한 부분이 돋보였다. 하지만 2층 전시관에 피카소 전시회 바로 옆에 다른 전시회를 개관함으로서 혼란을 준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곁에서 피카소의 작품에 대해서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못내 아쉽기는 했지만 언젠가 다시 그의 작품을 볼 때는 처음보단 나으리라고 기대해본다. 물론 그 때는 곁에서 설명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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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ine Comedy : A Retrospective of Bahc YiSo

박이소Bahc YiSo라는 작가에 대해서 전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우연히 노블레스Noblesse.com라는 사이트에서 하는 이벤트를 통해서 알게 되었고 당첨이 되는 바람에 가게 되었다.

작품을 하나하나 감상하면서 느낀 것은 작가 본인은 절대로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평범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했을 뿐인데 그것이 남들의 눈에 매우 멋지고 아름답고 훌륭하게 비쳐진게 아닐까 싶다. 물론 나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이다. 그의 작품들이 평범하다거나 예술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다라고 말할 자격이 없을 뿐 아니라 그럴 형편조차 되지 않는다.

여러가지 작품들이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다녀온 즉시 그때의 인상들을 기록해두지 않은 까닭에 지금 이곳에 옮길만한 내용이 없다. 하지만 내 정신과 마음과 생각과 영혼 깊숙히 간직하고 있는 느낌은 매우 강렬하다. 하나님께서는 왜 그를 더 살게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심장이 마비되어 죽게 하셨는지 나는 알 수 없다. 또한 그가 하나님을 믿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삶을 통해서 그의 작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 대해서 예술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와 죽음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삶과 작품이 나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고민할 여유를 갖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된다. 그럴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그가 던진 단어 하나가 떠오른다.

'정직성'(Hon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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