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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설레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빙과류가 떠오르게 되었다.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인지도 모르겠다만, 설레임이라는 그 감정이 주는 가슴 벅차 오르는 그 느낌을 빙과류의 맛으 대체하면서 식상함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무언가에 설레이는 감정을 느끼는 경우가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다. 낯선 곳을 여행하면서도 그닥 새롭게 느껴지지가 않고, 마흔이라는 나이에 견줄 수 없는 시간의 흔적이 남은 곳이나 자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을 가더라도 당연한 게 아닌가라며 그닥 감흥이 없다. 하지만, 가슴을 콩닥콩닥 뛰게 하는 어떤 일들이 있기도 하다. 다른 사람들은 잘 발견하지 못하고 눈치채지 못하는 것을 마치 나 혼자서만 발견했다는 생각이 드는 일들이다. 돈이 벌리는 일도 아니고 신문 토막 뉴스거리도 아닌 매우 사소한 일이지만 그런 사소함 가운데 눈물이 울컥하며 가슴이 찡한 무언가가 있는 일들이다. 자기 상황도 그닥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더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도와주는 경우를 말이다. 가진 게 많고 여유가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쉽다. 하지만, 가진 것도 없고 여유도 없는데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이지만 그게 진짜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런 설레이는 일들이 좀 더 자주 많이 있으면 좋겠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내가 매일매일 하고 있는 수많은 일들이 돈을 벌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의 인정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단지 그 목적이 아닌 스스로 만족을 얻기 위한 경우도 있고, 때론 정말 남을 도와주고 싶은 생각에 다른 어떤 것을 포기하고 하는 경우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것이든간에 지속되고 반복되다 보면 식상해지기 마련이고 처음에 가졌던 설레임, 초심을 잃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의욕적으로 무언가 해보려고 하지만, 하다 보면 이런 저런 반대 의견이나 다른 사람의 게으름으로 지연되고 하다보면 나도 모르게 포기해버리거나 흐지부지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 남탓, 상황탓, 환경탓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나’이다. 무언가에 익숙해지는 것, 그래서 그 어떤 설레임도 없이 습관적으로 하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이왕이면 하기 싫지만 억지로 해야만 하는 그런 일들에도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와 목적을 부여해서 설레이는 마음으로 한다면 더 낫고 좋지 않을까 싶다.

반복되는 일들 가운데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고 식상함 보다는 설레임을 가지려는 노력을 하는 오늘 하루이고 싶다.

2018.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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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을 떠올리면 잊혀지지 않는 것이 벼락치기이다. 시험이 코앞에 닥치면 평소에 전혀 들여다보지 않던 교과서를 들여다 볼 수 밖에 없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서 베끼거나 복사하는 일이 벌어진다. 벼락치기로 머리 속이 우겨넣은 것들은 시험이 끝나는 즉시 소멸되어야 한다. 그래야 또 다른 시험을 보기 위한 정보를 저장할 공간이 확보되기 때문이다. 물론 벼락치기가 통하는 과목이 있고 절대 통하지 않는 과목도 있다.

벼락치기는 단지 시험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전시 행정이라는 용어로 불리기도 하는데 보통 학교에 귀한 손님이 오신다거나 외부 기관의 감찰이 올 때 또다른 벼락치기를 하게 된다. 평소에 안하던 곳을 청소하게 되고 미처 해놓지 않았던 것을 마치 했던 것처럼 꾸미게 된다. 방문 예고는 늘 갑작스럽기 때문에 방문 직전까지 모든 인력이 동원되어 준비한다. 하지만 그와중에도 눈에 띄지 않게 농땡이를 치는 사람은 늘 있기 마련이다. 얄밉지만 굳이 지적해서 그들의 적이 될 필요는 없다. 검열관들에게 그닥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것인데도 아주 사소한 것까지 신경을 쓴다. 아주 사소한 것이 검열관들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너그럽게 해주기를 바라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번 지방선거를 보면서 벼락치기나 전시 행정이 통하지 않는 부분도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그들의 몸부림이 벼락치기였는지는 임기가 끝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당선 결과보다는 임기동안 어떤 일들을 해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거짓말쟁이 또는 사기꾼이란 소리를 들을지 어떨지는 임기 중 또는 그 후에 알게 될 것이다.

평소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진실이겠지만, 진실을 보여주는 데는 책임이 따른다. 평소에 미처 신경쓰지 않았던, 못했던 이유를 대는 것은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검열하고 감찰하는 사람들도 또 다른 기관에 의해 검열과 감찰을 당하게 될 때 마찬가지 입장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열이나 감찰은 필요악이다. 그것이 없으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고 행정은 엉망이 된다. 매뉴얼 대로 하고 있는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하고 점검하는 절차는 주기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기준을 벗어난 것에 대해 적절한 징벌과 징계가 있어야 다시 기준을 벗어나지 않게 된다. 그러나 기준을 벗어난 것을 바로 잡는 것이 목적이 되야지 기준을 벗어난 것에 대해 지적하고 그에 대한 책임과 댓가 지불에 중점을 둔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내가 맡고 있는 일에 대해 지나치게 익숙해졌거나, 더 급한 일들 때문에 미루거나 놓치거나 안하고 있는 일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검열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단지 변명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계기를 통해서 일이 많다는 것을 어필할 수도 있고 좀 더 책임을 덜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반대로 댓가를 치뤄야 할 수도 있다.

검열관들에게 지적을 받고 안받고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맡은 일에 대해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면 된다. 굳이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안한 것을 한 것처럼 억지로 꾸며내지 말자.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기꺼이 달게 받자. 그게 더 멋진 일이 아닐런지...

2018.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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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다람쥐보다는 햄스터를 더 많이 키우는 것 같다. 워낙 다람쥐를 많이 잡아서 없기도 하고 햄스터가 번식력이 좋아 키우는데 부담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작은 동물이라도, 키운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키우다가 병들거나 죽기라도 하면, 보통 골치 아픈 일이 아니다. 아마도 그래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키우는 것이 싫은 건지도 모르겠다. 내 몸 뚱아리, 내 가족만 건사하는 것도 벅차고 벅찬데 반려 동물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는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인생을 무기징역수와 같은 삶으로 비유한다. 매일 아침이면 어쩔 수 없이 지옥철을 타고 회사에 출근해서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만 하는 현실, 그렇게 5년, 10년, 20년을 살다가 언젠가는 회사에서 쓸모 없는 존재로 평가받고 퇴출 당하는 삶… 물론 비약이 심한지도 모르겠으나 그리 크게 다르지 않은 게 우리의 인생이 아닌가 싶다.

외국에서 돈을 벌기 위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와서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온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보면서, 저렇게 고생해서 본국의 가족들에게 얼마나 보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문득 해보게 된다. 그저 몸만 누울 공간 밖에는 없는 좁아 터진 고시원이면 그나마 잘 사는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 여러 명이 모여서 사는 곳에서 지내는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지옥같진 않을까. 그런 그들에 비하면 수천만원 내지는 억대의 전세 대출 빚을 지고 그나마 넓은 집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아무리 좋은 상황이나 형편 속에서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도저히 행복해 할 수 없는 상황이나 형편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삶은 결코 다람쥐나 햄스터와 비교될 수는 없다. 아무리 인생이 쳇바퀴를 돌리듯이 반복되고 돌고 도는 것 같아도 그렇게 살아갈 수 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어제도 했고, 그저께도, 지난 주, 지난 달, 작년에도 했던 일을 지금도 똑같이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할 수 없다. 비록 작년에 했던 일, 어제 했던 일을 오늘 또 하고 있지만, 작년과 어제의 나는 이미 과거의 내가 했던 것이고, 오늘, 지금의 내가 하는 것이다. 작년이나 어제보다는 더 잘 할 수 있고, 좀 더 색다르게 할 수도 있다.

더이상 나의 하루하루 새롭고 고귀한 인생을 다람쥐나 햄스터의 쳇바퀴나 무기징역수에 비교하지 말자. 아무리 상황이 엿같고 지옥같아도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달린 것이다. 내 의지와 노력으로 상황이나 형편을 바꿀 수 없다고 하더라도 상황이나 형편에 의해 내가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가족이 있음에 감사하자.

2018.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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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고 싶지만, 바보처럼 항상 손해보는 착하고 좋은 사람은 되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된다고 모두 다 굶는 것은 아니고 모든 사람에게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없다. 과연 어느 정도의 관계까지 착하고 좋은 사람이어야 하는 걸까? 적어도 매일 또는 매주 정기적으로 만나고 부딪히는 사람들에게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고 싶은, 그래서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만나더라도 피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고 싶은데 그게 정말 쉽지 않은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있긴 하지만, 드라마 <나의 아저씨>처럼 매 회마다 눈물을 흘렸던 드라마는 내 기억에는 없는 듯 하다. 현실이 아닌 드라마이기에 그럴싸하게 꾸며놓은 것이기에 그냥 거기에 감정적으로 휩쓸린 것이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지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드라마 속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작중 인물처럼 힘들고 외롭고 괴롭기 때문에 일종의 위로와 공감을 받았기 때문은 아니었나 싶다.

나에게도 그런 삼형제와 후계동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내 아픔, 슬픔, 외로움 등을 나 혼자만 짊어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정말 축복이 아닌가 싶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감당할 수 있고 감당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욕심 낼 필요도 없다.

나에게도 슬리퍼를 선물해주는 부하직원이 있었으면 좋겠고, 슬리퍼를 선물 받을 만큼 좋은 상사이면 좋겠다. 비록 폭력과 음주, 그리고 윤회 사상과 불교 세계관 등 거슬리는 부분이 전혀 없지는 않았으나, 그 모든 것들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 속의 사람들의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드라마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현실에서도 그런 따뜻함이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런 소식을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런 사람이면 좋겠다.

201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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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빈 틈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품이나 인성까지도 아름답게 만들진다는 보장은 없다. 단지 가정만이 아니라 학교와 학원 등의 사회 속에서 겪게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아물고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인격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 왕따가 있다면 따돌림의 하는 사람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걸까?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따돌림을 받기에 충분한 동기와 계기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물론 단순한 오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한 사람을 매도해버리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어쨌거나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에 대해서 소외를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왜 그런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자기 잘못은 없다고 그런 대접을 받을 만큼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는게 당연지사이다. 잘못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따돌림을 받을 만큼 잘못하진 않았다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잘못을 축소하면서 따돌리거나 소외시키는 사람들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나 아무리 항변해봐야 소용이 없는 지경에 이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조직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 다른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다다르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를 통해 듣게 되고 알게 되었을 때 사람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싫어하는 그 누군가에게 다가가 왜 싫어하는지를 물어볼 수도 있고 그 감정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하는 관계에 있을 경우에 더더욱 그러하다. 반대의 경우, 상사가 부하 직원의 마음에 들기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살아가면서 진실을 마주하는 것, 특히 나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경우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정답은 없겠지만, 그로 인한 일종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격적인 성숙이란 바로 이런 경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해 좋은 감정으로 대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거기에 휘둘리기 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나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개선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 속에서 최대한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관계를 유지하며 내 자신을 지켜내는 지혜와 비결이 필요하다.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지 잘 모르고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기억하지만 빌린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잘 대해준 것은 기억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상대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바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기억해주는 한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럼 나는 누구를 기억하는가?

20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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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분의 기적>, <미라클 모닝>과 같은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는 정말 그대로 하면 내 인생이 180도 뒤집힐 만큼 뭔가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 같은 기대감을 갖게 된다. 하지만, 읽고 나서 책에서 말하는 대로 실천하려다 보면 내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하고 불편해 하다가 결국은 포기해버리고 심지어는 책의 저자들을 나 같은 사람들에게 책팔기 위한 사기꾼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최근 <아침 글쓰기의 힘> 이란 책이 눈에 띄어서 읽어 볼까 하다가 과거의 기억과 경험들을 떠올려 본 결과, 그냥 제목이 전부가 아닐까라는 일종의 선견지명(?)을 가지고 그냥 제목대로 해보기로 했다. 굳이 책을 읽지 않더라도 아침 글쓰기를 통해 어떤 힘이 생기는지 직접 경험해보자는 것이다. 물론 책에는 아침 글쓰기를 지속할 수 있는 저자만의 좋은 아이디어들이 소개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결국 거기에 나를 맞추지 말고 내 식대로 해보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을 때 드는 생각이 바로 복권이나 로또다. 하루에 커피 전문점에서 사 먹는 커피값을 아껴서 차라리 복권이나 로또를 사다가 당첨이 되면 그게 더 이득이 아닐까라는 어이없는 생각 말이다. 하지만, 그 돈을 모으는게 더 낫다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티끌모아 태산, 수적천석이라는 옛말이 있듯이 나이가 드니 기적보다는 축적이 더 위대하고 큰 힘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10분의 기적>도 <미라클 모닝>도 한단어로 말하면 축적이 아닌가 싶다.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면 그것만큼 무서운 게 없고 인생을 바꾼다는 것이다. 근데 매일매일 조금씩 꾸준히 무엇을, 언제 할지 등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이 할 수는 없는 것이다.


10년 전에는 출근 하기 전 6시에 영어회화 학원을 다닌 적도 있었고, 수영을 배우러 다닌 적도 있었다. 지난 10년 동안 계속 했더라면 지금의 나의 영어회화와 수영 실력은 고수에 도달했을 터인데 이런저런 핑계로 하지 못했다. 비록 나이 50을 향해 달려 가고 있지만, 지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건강을 위해 꾸준히 축적할 수 있는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수영이나 탁구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운동은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어느 수준 이상 실력을 향상시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얼마 전까지 탁구를 하려고 몇 번 레슨을 받았으나 결국 포기해버리고 말았다. 이왕 할 바엔 자세도 제대로 갖추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했을 때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추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했지만, 그러기 위해 투자해야할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런 실력을 갖추려고 하다가 포기하기 보다는 그저 몸을 움직이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면서 꾸준히 하는 것이 더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다.


한 순간의 기적을 통해 변화되기 보다는 좋은 습관의 축적을 통해 비록 나이가 들더라도 과거보다 자신감이 넘치고 후회가 적은 삶을 살아감으로써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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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이기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일인지 모른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어느 날 아침, 한 승객이 버스에 올라타서 어디에 앉을까 고민하는 찰나 운전기사는 빨리 앉으라고 소리를 지른다. 앉을 자리를 찾아 고민하던 승객은 앉을라고 하는데 왜 소리를 지르냐며 따진다. 시간에 맞춰 버스를 운행해야 하는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했고, 승객은 어느 자리에 앉아야 비에 젖은 몸이 편하게 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느라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각자 서로의 입장이 있는 것이다. 승객의 입장에서는 조금만 기다려줘도 되는 거였고 굳이 소리를 지를 필요까지는 없었다. 운전기사의 입장에서는 일단 아무 자리나 앉고 나서 불편하면 신호대기시나 다음 정거장에서 자리를 옮기면 되는 거였다. 이토록 생각과 마음이 다른 것이 사람이고 대부분이 상대방을 배려하기 보다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상대방이 얄미운 것이다.

운전기사가 바닥이 미끄러우니 자리에 앉으면 출발하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려주었다면 어땠을까, 승객은 시간에 맞춰 버스를 운행해야하는 운전기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렸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각자 상대의 입장에 있어보지 않으면 이런 헤아림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따지기 전에 상황을 이해하고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했는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감정적으로 이미 기분이 나쁜 상황에서는 결국 누군가 먼저 사과하기 전까지는 관계 회복은 불가능하다.

비가 억수로 내리던 어느 날 아침 출근길의 풍경은 그닥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버스는 운행하고 있고, 승객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깊은 잠에 빠져있다. 서로에게 기분 좋은 말로 시작할 수 있었던 하루의 시작을 망친 그들이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니 부디 남은 오늘 하루동안은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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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스킨을 변경했다. 지저분한 것들을 숨기고 깔끔한 스킨을 골랐다. 100%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외관에 신경 쓸 여력이 없기에 가장 심플한 것으로 선택했다. 더구나 스마트폰에서 보기 편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브런치로 옮길까도 생각해봤지만, 왠지 거기에서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게 될 거 같아서 다시 욕망을 잠재웠다. 지금 인스타그램와 연동되어 있는 텀블러로 옮기는 것도 고민해봤지만, 기존에 쓴 글들을 옮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에 결국 사진과 글을 분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스킨을 바꾸면서 과거에 만들었던 카테고리를 보니 다시 서평과 영화평, 아니 평이라기 보다는 감상문을 써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학이나 영화, 미디어 등을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로서 비평을 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될 뿐 아니라 전문적인 지식의 한계도 느꼈었고, 큰 의미가 없는 거 같아서 꽤 오랜 동안 쓰지 않았었다. 하지만, 그냥 읽고 보고 흘려보내기에는 뭔가 아쉬움도 있고, 그냥 주관적인 느낌이나 감상을 적는 것은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그렇게라도 글을 써야 늘지 않을까 싶다.

과거와 다르게 검색환경이 예전보다 지능적으로 변했기에 어디에 내 글들이 노출될지 알 수 없고, 비전문가가 남긴 평으로 자칫 팬들에게 돌을 맞는 일이 생길 수도 있기에 매우 조심스럽기는 하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근다는 옛말도 있고,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 때문에 주저하다가 더 좋은 것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설마 욕을 담을 만큼 개쓰레기 같은 책이나 영화 등을 보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설사 그런 것을 접하더라도 굳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그만이니 말이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과 본 영화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과연 어떤 호응이 있을지 기대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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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커피

PLANT(植)/Opinion 2018.05.05 04:41

아재커피를 홍보하려고 쓰는 글은 아니다만 제목에 적고 보니 본의 아니게 홍보가 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실 제목만 가지고도 글을 써 내려가는데 큰 도움이 되곤 한다. 글쓰기 초보이기에 도무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 그냥 눈 앞에 있는 것을 소재로 삼으면 의외로 글이 술술 써지곤 한다. 물론 품질 좋은 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새벽 3시가 넘었다. 평소 같으면 잠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작년 11월 부터 시작한 편의점 알바를 하는 중이다. 머 일주일에 한 번, 금요일 밤부터 토요일 아침까지 10시간 일하는 거라 그닥 힘들지는 않다. 하지만, 엄청 졸립다는 사실은 절대 부인할 수가 없다. 졸음을 몰아내 보고자 글을 써본다.

2006년 이 블로그를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10년동안 꾸준히 글을 썼으면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더 나은 사람이라는 게 어떤 건지 설명하기가 쉽지 않지만, 아마도 현재의 모습에 그닥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생각이 아닌가 싶다. 10년동안 글쓰기를 꾸준히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할 수는 없다. 그저 10년동안 글쓰기를 꾸준히 했더라면 좀 더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을 뿐이다.

이 블로그를 시작하던 때만해도 다양한 SNS 들이 존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서비스도 있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서비스도 있다. SNS를 하면서 가장 힘든 것은 내가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러워하거나 현재 나의 모습, 내가 처한 상황 등을 비교하는 것이다. 물론 나만 그런 것은 아닐테고, 그런 이유로 SNS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다른 사람들의 사진과 동영상,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 내가 경험할 수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간접적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과 나의 처지를 비교하는 순간부터 악몽은 시작된다.

남들이 먹고 입고 사고 가고 하는 것을 보면서 내가 먹지도 입지도 사지도 가지도 하지도 못하는 것으로 상대적인 빈곤 내지는 박탈감을 느낄 때 괴로운 것이다. 이 고질병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을까 싶다. 나는 나고 남은 남인데 굳이 남처럼 살아야 할 필요는 없다. 남들이 먹고 입고 사고 가고 하는 것을 나도 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도 없고, 금수저가 아닌 이상에야 모든 것을 누리거나 소유할 수 없다. 남들과 비교하면서 괴로워할 바에는 그저 현재 내가 처한 환경과 상황을 극복하고 순응하며 견뎌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떻게 글을 쓰기 시작하긴 했는데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할지도 쉽지 않다. 기승전결 구조의 글을 쓸 줄 알면 좋겠다.

새벽 4시부터 졸음이 가장 쏟아지는 시간이고 추위가 느껴지는 시간이다. 빨리 이 시간이 흘러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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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념들

PLANT(植)/Opinion 2018.05.03 13:45

자칫 잘못 들으면 오해할 수 있는 제목이다. 잡념들... 

딱히 어떤 글을 써야 겠다고 정하고 글을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렇게 정하고 나면 글쓰기가 어려워진다. 그냥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 내려가는 것이 가장 편하고 좋다. 대신 그만큼 품질(?)이 저하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품질 좋은 글을 쓰기에는 전문지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냥 머리 속에 떠오르는 잡념들이나 적어보려 한다.

버스를 기다리거나 타고 가다가, 길을 걷다가, 아이스크림을 먹다가, 음악을 듣다가 번뜩 떠오르는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그 때를 놓치면 다시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김영탁 작가의 곰탕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을까 작가의 상상력과 엉뚱함 그리고 초고를 완성하기까지의 노력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 재능과 열정이 부럽다.

글쓰기를 비롯해서 어떤 것이나 사람들의 심리를 잘 알고 그 부분을 잘 건드려주는 전략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그래야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종종 그런 부분을 전혀 무시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정말 안타깝지만, 대개 그런 경우 자신의 스타일과 고집을 꺾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호응을 하고 있다고 착각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오직 자신만의 방식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 혹시 나도 그렇지는 않은가 싶다.

종종 상대방에게 서운함 내지는 섭섭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미안해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당당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누구나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것이다. 내가 상대방이라면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 그는 그이고 나는 나인 것이지 그가 나처럼 될 수 없고 나처럼 느끼거나 생각할 수 없다. 내가 느끼는 서운함, 섭섭함을 이야기해봐야 상대방은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 뭐라 한들 아무런 소용이 없다. 결국은 상대방 곁을 떠나거나 무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나를 싫어하거나 무시하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같이 무언가를 해야하는 상황을 피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결국 이런 현실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결단이 필요하다. 언제까지 남에게 끌려다니면서 감정적으로 손해를 보며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용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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