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완벽한 사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누구나 빈 틈이 있고 부족한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과 보살핌을 받으며 자란다고 하더라도 그의 인품이나 인성까지도 아름답게 만들진다는 보장은 없다. 단지 가정만이 아니라 학교와 학원 등의 사회 속에서 겪게되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상처받고 아물고를 반복하면서 우리의 인격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다듬어지기 때문이다.

조직 내에 왕따가 있다면 따돌림의 하는 사람들에게만 잘못이 있는 걸까? 따돌림을 받는 사람이 따돌림을 받기에 충분한 동기와 계기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물론 단순한 오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한 사람을 매도해버리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어쨌거나 의도적으로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것에 대해서 소외를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 왜 그런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누구나 자기 잘못은 없다고 그런 대접을 받을 만큼 잘못한게 없다고 생각하는게 당연지사이다. 잘못이 전혀 없지는 않지만 따돌림을 받을 만큼 잘못하진 않았다고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잘못을 축소하면서 따돌리거나 소외시키는 사람들의 책임을 부각시키는 게 사람의 본성이다. 그러나 아무리 항변해봐야 소용이 없는 지경에 이른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조직을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이런 경우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겨 다른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안타까운 현실에 다다르게 된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다른 누군가를 통해 듣게 되고 알게 되었을 때 사람마다 다양한 반응을 보일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를 싫어하는 그 누군가에게 다가가 왜 싫어하는지를 물어볼 수도 있고 그 감정을 바꿔보려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더구나 그 누군가에게 잘 보여야 하는 관계에 있을 경우에 더더욱 그러하다. 반대의 경우, 상사가 부하 직원의 마음에 들기위해 노력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도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살아가면서 진실을 마주하는 것, 특히 나에 대하여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되었을 경우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옳은지에 대해서 정답은 없겠지만, 그로 인한 일종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격적인 성숙이란 바로 이런 경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아닐까 싶다. 모든 사람이 나에 대해 좋은 감정으로 대할 수는 없겠지만, 굳이 저 사람도 나를 싫어하는게 아닐까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힐 필요는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든 좋아하든 거기에 휘둘리기 보다는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람마다 장단점이 있기 마련인데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나의 단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개선해 나갈 것인지 고민하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복잡하게 얽히고 섥힌 인간 관계 속에서 최대한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관계를 유지하며 내 자신을 지켜내는 지혜와 비결이 필요하다.

과거의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지 잘 모르고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돈을 빌려준 사람은 기억하지만 빌린 사람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잘 대해준 것은 기억하지만 상대방은 나를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상대적이고 이기적인 것이 바로 사람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기억해주는 한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그럼 나는 누구를 기억하는가?

2018.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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